“컵라면 사러 갔다가 1000만원 긁었다”…편의점·안방 덮친 ‘금빛 광풍’
“금값이 미쳤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네요.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역시나 없어서 못 판답니다.”

직장인 최모(34) 씨도 28일 오후 허탕을 쳤습니다. 도시락을 사러 간 게 아니라 무려 600만원이 넘는 실버바를 사러 갔는데 말이죠. 점주에게 “예약 끝났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꽤나 아쉬워 보였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밥상 물가는 무섭고 주식장은 파란불인데, 금값만 혼자 ‘나 홀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니까요.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 믿을 건 금뿐”이라는 말이 2030 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껌을 사듯 금을 사고, 홈쇼핑 채널을 고정해두고 전화기를 붙드는 2026년의 기이하고도 뜨거운 ‘골드 러시’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슬리퍼 신고 금 산다…유통家 휩쓴 ‘골드바’
유통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콧대 높던 백화점 귀금속 코너 앞을 서성이던 발길이 슬리퍼 신고 나가는 집 앞 편의점으로 옮겨갔다. 접근성 좋은 편의점과 안방 1열 홈쇼핑이 대한민국 금 거래의 ‘메카’로 급부상한 것이다.
현장의 열기는 수치로 증명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의 모바일 생방송 ‘금은방 라이브’는 최근 주문액이 4배 넘게 폭증했다. 흥미로운 건 소비자들이 금을 대하는 태도다. 예전처럼 예쁘게 세공된 목걸이나 반지를 찾는 게 아니다. 환금성 좋고 묵직한 ‘덩어리’, 즉 자산형 상품에 돈다발이 몰린다.
실제 방송이 켜지자마자 ‘완판’ 딱지가 붙는 건 1000만원을 호가하는 50g짜리 골드바와 600만원대 1000g 실버바다. 현대홈쇼핑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심정으로 금·은 편성을 25%나 늘렸는데, 방송 한 번에 매출 20억원을 찍었다.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금 테크’의 최전선은 의외로 편의점이다. GS25가 2026년 병오년(붉은 말의 해)을 맞아 야심차게 내놓은 1010만원짜리 골드바(37.5g)는 내놓기가 무섭게 동났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사전 예약에서만 3주 만에 8억3000만원어치가 팔려나갔다.
CU와 세븐일레븐도 상황은 판박이다. CU의 99만원짜리 소형 순금바는 진작에 품절됐고, 세븐일레븐에서도 열흘 만에 340돈이 넘는 금덩이가 주인을 찾아갔다.
◆“불안하니까”…비트코인 대신 금 택한 2030
이러한 기현상의 바닥에는 ‘공포’와 ‘탐욕’이 섞여 있다.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지금 안 사면 벼락거지가 될 수 있다는 조바심이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금 1g 시세는 25만1640원을 찍었다. 불과 3개월 전(18만7300원)보다 34%나 뛴 미친 상승세다.
판을 주도하는 건 의외로 젊은 층이다. 쌈짓돈 굴리던 5060세대의 전유물이었던 금 시장에 ‘영리치’와 ‘월급쟁이 개미’들이 대거 난입했다. 주요 거래 플랫폼 데이터를 까보니 30대(28.7%)와 40대(24.1%) 구매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을 사재기하고 있는 것도 가격을 밀어 올리는 강력한 요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려 ‘뇌동매매’를 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시중은행의 한 자산관리(WM) 센터장은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올랐다. 피로감이 누적되면 가격이 출렁일 수 있다”면서 “특히 홈쇼핑이나 편의점에서 살 때는 제품 가격에 녹아있는 세공비와 유통 마진을 잘 따져봐야 한다. 나중에 되팔 때(바이백) 제값을 받을 수 있는지 조건을 꼼꼼히 확인하고 들어가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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