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삼한사온'…기후 재난은 '약자'부터 덮친다
폭염 대명사 1994년급 더위, 이젠 연례행사
춥고 더운 날씨, 저소득층·노인 등에 치명적
바우처 사각지대 존재, 에너지 효율 높여야
편집자주
산업화(1850~1900년) 이후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 이 수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의 마지노선으로 불립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후속으로 1.5도에 임박한 기후 위기 현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들을 격주로 폭넓게 연재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이후 한파가 이어지며 한반도는 일주일 넘게 냉동고와 같았습니다. 일본의 한 방송사 기자는 뜨거운 라면을 서울 한강공원 야외에 뒀더니 꽁꽁 얼었다는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죠. '온난화로 지구가 유례없이 더워지고 있다는데 왜 겨울은 추울까'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입니다.
기존 겨울 날씨는 일주일 중 3일이 춥고 4일은 따듯한 '삼한사온'으로 요약됩니다. 찬 바람을 동반한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해지면 기온이 떨어지고, 약해지면 올라가는 주기가 5~7일마다 반복하면서 겨울 날씨 공식으로 굳어진 건데요.
그런데 지칠 줄 모르는 강추위를 보면 삼한사온은 더 이상 대표적인 겨울 날씨로 불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일주일 단위로 예측 가능했던 겨울 날씨가 종잡을 수 없게 된 원인은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북극 온도가 높아지면서 5~7일 주기로 바뀌었던 시베리아 고기압의 대기 흐름이 느려져 겨울철 추위 또는 따뜻한 날씨가 과거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겨울 평균 온도가 온난화로 상승한 건 분명합니다. 문제는 한파 장기화입니다.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추위는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지만 빈곤층, 고령층 등 취약계층에 특히 가혹합니다. 추운 날씨가 이들의 삶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기 때문이죠. 일상이 된 겨울 강추위를 재난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올겨울 한파에 따른 인명 사고를 살펴보겠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추위가 직접적 원인이 돼 발생하는 저체온증, 동상, 동창 등 한랭질환자를 매 겨울마다 집계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 22일까지 누적 한랭질환자는 234명으로 이 중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한랭질환자 209명, 사망 5명에 비해 모두 늘어난 수치입니다. 참고로 역대 한랭질환자가 가장 많았던 때는 2017년 12월~2018년 2월로 631명이었습니다. 당시 겨울은 한파일수(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 이하)가 11.8일로 역대 가장 길었습니다.
올겨울 강추위로 8명 목숨 잃어

취약계층에 겨울보다 더 위험한 계절이 있습니다. 바로 여름입니다. 한동안 역대 가장 더웠던 해는 1994년이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 2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더위로 당시 여름이 이례적이었단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제 1994년급 폭염은 매 여름마다 겪는 연례 행사가 됐습니다.
기상청 집계 결과 지난해 6월 1일~8월 30일 여름 평균 기온은 30.7도로 1973년 기상 관측을 체계화한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2위가 1994년 30.5도, 3위는 2024년 30.4도였죠. 연간 폭염 일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2018년 31일, 2024년 30.1일, 지난해 29.7일 순으로 모두 최근입니다. 열대야 일수 역시 역대 2위인 1994년을 제외하곤 1~4위가 2018년 이후였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일상화된 폭염 역시 취약계층에 치명적입니다. 실제 소방청에 따르면 온열질환으로 119 구급대가 출동한 건수는 2020년 686건에서 2024년 3,164건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이송 인원도 646명에서 2,698명으로 네 배 넘게 뛰었죠. 2024년엔 이송 인원 중 절반 이상인 52.3%가 60대 이상 고령층이었습니다. 폭염으로 사망·실종한 사람도 2020년 29명, 2021년 42명, 2022년 34명, 2023년 85명, 2024년 121명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온 상승은 예년보다 잦아진 기습 폭우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기온이 오르며 수증기를 더 머금게 된 대기에서 빠르게 형성된 비구름대가 순식간에 비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온난화는 여러모로 기후 재난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죠.
노인·장애인에겐 먼 에너지 바우처

강추위, 폭염에 따른 인명 피해가 늘다 보니 정부도 이상 기후 현상을 재난으로 여기고 정책적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바우처가 대표적입니다. 취약계층의 전기, 도시가스, 등유 등 에너지 구입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지원 대상은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 수급자이면서 세대원 중 노인·장애인·영유아·임산부·중증질환자·희소질환자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취약계층의 겨울철 난방비 부담을 덜기 위해 에너지 바우처 지원금을 대폭 늘리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취약계층이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습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달 펴낸 '에너지 빈곤 대응에서 기후 복지로: 초고령사회의 에너지 복지 정책 추진 방향 검토' 보고서를 보면 2020~2024년 에너지 바우처 미사용액은 4,773억 원입니다. 이 중 노인, 장애인이 쓰지 않은 금액은 각각 2,056억 원, 1,549억 원으로 전체의 75.6%를 차지합니다.
노인·장애인이 에너지 바우처를 신청·사용하기 쉽지 않은 탓이 큽니다. 예컨대 냉난방비 요금 감면을 받으려면 고지서를 들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거나 인터넷 신청을 해야 합니다. 노인·장애인에겐 버거운 일이죠. 이와 관련 정부는 노인 거주 비율이 높은 쪽방촌 등을 조사원이 찾아 에너지 바우처 미사용 원인을 해결하는 돌봄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창호 교체, 단열 공사 등 집이 더위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주택 에너지 효율개선 사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보고서를 쓴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요 국가들이 에너지 복지 제도를 단순 비용 보조에서 탈피해 효율 개선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며 "기후에너지환경부, 보건복지부, 지자체 등으로 분산돼 있는 에너지 복지 정책 전달 체계도 통합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종=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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