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로 버틴 수능 33년… 난제 풀 대통령 결단이 필요하다

송옥진 2026. 1. 2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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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객관식 시험'이라는 칭송과 '교실 수업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시험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다.

2014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김성훈 동국대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정답이 없는 사고, 확산적 사고로 창의력을 길러야 하는데 수능은 정답을 찾는 수렴적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황우여 교육부 장관 때도 수능을 4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해 교육과정 이수를 확인하는 자격 시험으로 활용하고, 입학 전형에서 대학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2026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김창원 경인교대 전 총장은 "수능 정시 체제가 오래 굳어지면서 공정하고 타당하게 신입생을 뽑을 능력이 있는 대학이 별로 없어, 대학도 수능 점수로 뽑는 게 뒷말 없이 가장 편하다"며 "수능이 자격고사가 되려면 대학이 학생을 뽑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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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시험 : 수능의 배신]
③객관식 너머, 수능의 미래
편집자주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객관식 시험'이라는 칭송과 '교실 수업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시험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다. 1993년, 학력고사로 대표되는 암기식 시험 체계에서 한국 교육을 구해 줄 '구원자'로 등장했지만 인공지능(AI) 혁명 시대의 인재 역량을 평가하기에는 맞지 않아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커졌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영어 불수능' 논란이 촉발한 수능 비판론과 이에 맞선 옹호론을 집중 취재했다. 또 수능 출제에 관여한 내부자가 전하는 깊은 뒷이야기를 바탕으로 서른세 살이 된 이 시험이 어떻게 거듭나야 할지 살펴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세종=왕태석 선임기자

수능 개편안은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절대평가 전환(자격고사화) 또는 폐지, 서·논술형 도입이다. 구체적 방안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경쟁을 완화하고 획일적인 평가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같다.

다만 객관식 정량평가가 가장 공정하다는 인식, 오랜 시간 지속된 대입 시스템의 변화가 야기할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 이로 인해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는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수능이 30년 넘게 큰 틀을 유지하며 땜질식 처방을 이어온 이유다. 결국 정략적 유불리를 떠나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 가장 나은 대입 개편안을 추진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절대평가 전환... 자격고사화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은 10년 전부터 얘기된 오래된 미래다. 2014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김성훈 동국대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정답이 없는 사고, 확산적 사고로 창의력을 길러야 하는데 수능은 정답을 찾는 수렴적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황우여 교육부 장관 때도 수능을 4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해 교육과정 이수를 확인하는 자격 시험으로 활용하고, 입학 전형에서 대학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공교육 혁신 보고서'에도 이 방안이 담겼다.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1등급 80점 이상, 2등급 70점 이상, 3등급 60점 이상, 4등급 50점 이상, 5등급 50점 미만)로 전환하고 각 등급별 목표 비율을 20%로 맞추는 구상이다. 국교위는 이 보고서를 오는 9월 발표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시 참고할 예정이다.

차정인(오른쪽)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20일 국회도서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과 출신학교채용차별방지법 국민운동이 개최한 '출신학교·학력 채용 차별 방지법 국민대회'에 참석해 최교진(왼쪽) 교육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대입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돼, 자연스레 자격고사 수순을 밟게 된다. 이에 따라 대학은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수능의 변별력을 대체할 다른 전형 요소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과 학부모의 대입 준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 전환이 10년 넘게 실행되지 않은 이유다.

2008~2011년 평가원장을 지낸 김성열 경남대 명예교수는"절대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보는 평가이기 때문에 수능을 절대평가화하면 다른 평가 보조 수단이 또 들어와야 한다"며 "수험생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시의 혼란은 사교육을 더 키울 수 있다.

대학도 학생 선발권을 전적으로 넘겨받는 것을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다. 선발 시스템 구축에 비용이 많이 들고, 2024년 연세대 논술 전형의 문제 유출 사태처럼 평가원 수준의 엄격한 관리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2026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지낸 김창원 경인교대 전 총장"수능 정시 체제가 오래 굳어지면서 공정하고 타당하게 신입생을 뽑을 능력이 있는 대학이 별로 없어, 대학도 수능 점수로 뽑는 게 뒷말 없이 가장 편하다"며 "수능이 자격고사가 되려면 대학이 학생을 뽑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2040학년도 수능 폐지하자"

수능 폐지론도 대두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2033학년도에 수능 과목을 5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2040학년도엔 수능을 폐지하는 내용의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을 발표하면서 논의에 불이 붙었다.

시교육청은 이 개편안에서 "고등학교 학령인구(15~17세)가 현재의 절반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2040학년도 대입에선 수능을 폐지하고 학생 성장 이력 중심의 대입 지원 체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수능 폐지안과 자격고사화 모두 궁극적으론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성훈 교수는 "정부가 계속해서 대신 점수를 만들어주며(수능을 주관하며) 선발 과정을 책임질 순 없다"며 "대학이 스스로 선발 기준을 만들어서 공표하고 비리나 문제가 생겼을 땐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입에서 수능의 비중을 줄이자는 이야기엔 항상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나 '본고사 부활'과 같은 파급력 큰 이슈가 따라붙다 보니 교육당국은 관련 언급을 하는 데 소극적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능 폐지 방향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그렇게 제안을 해 놓으면 현장에서는 더 많은 혼란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게 사실"이라고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능에 서·논술형 도입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객관식 선다형 시험으로는 학생의 사고력과 탐구 과정,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국교위와 시교육청의 최근 보고서에도 모두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는 방안이 담겼다. 국교위의 '공교육 혁신 보고서'는 수능 도입 전에 "학교에서 서·논술형을 수능 유형으로 출제해 교사와 학생 모두 서·논술형 평가를 자연스럽게 시행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시교육청 개편안은 좀 더 구체적이다. 수능의 서·논술형 비중을 2033학년도 30%에서 2035학년도 40%, 2037학년도 5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국외대 캠퍼스를 빠져나오고 있다. 최주연 기자

서·논술형 수능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채점의 신뢰도 문제도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2017~2021년 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직과 교수는 "평가원이 이미 수십 년간 초등, 중등 임용고사의 서·논술형 채점을 해왔기 때문에 역량이 있다"며 "평가원이 출제와 채점을 맡으면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훈 교수도 "서·논술형 시험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다"며 "시행 여부의 의사결정 문제지 불가능, 가능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 중요"

선택지는 이미 다 나와 있다. 관건은 정부의 관심과 의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입시정책은 바꾸면 바꿔서 난리, 안 바꾸면 안 바꿔서 난리다(취임 100일 기자회견)"라며 그동안 교육 문제에 극도로 말을 아껴 왔다. 최근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교육 관련 언급은 없었다.

교육 문제가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하다 보니,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발언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현상 유지는 차악일 뿐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기선 교수는 "지금의 교육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막대한 예산과 시간, 노력을 쏟아붓지만 정작 남는 건 없는 소모적인 구조"라며 "대통령이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모든 학생의 성장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1~2014년 평가원장을 지낸 성태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수능이 시대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여론이 시끄러우니까 시험 봐서 점수로 들어가라고 한 것"이라며 "정권 입장에서 교육은 논의할수록 표 떨어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수능과 대입, 나아가 교육 개혁은"'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의 문제(김성훈 교수)", 즉 정부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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