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환율포기 선언…선거 앞두고 제조업 살리기 올인한 트럼프

임성현 특파원(einbahn@mk.co.kr),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김혜란 기자(kim.hyeran@mk.co.kr) 2026. 1. 29.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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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약(弱)달러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역점인 제조업 부활을 위해선 달러화 약세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축통화 패권국으로서 그동안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던 달러화의 위상을 포기하더라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당장 눈에 보이고 표가 되는 정책이 낫다는 것이다.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약달러 용인 발언에 유로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타내는 달러인덱스는(DXY)는 한때 전장 대비 약 1.5% 하락한 95.55까지 밀렸다. 이는 2022년 2월 이후 약 4년만에 최저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이 엔화가치 부양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다는 전망도 달러화 약세를 부추겼다.

가뜩이나 달러화는 트럼프발 리스크에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으로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확산된데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관세 협박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매도하는 이른바 ‘셀아메리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차기 연준 의장이 누가 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 입맛대로 금리 인하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달러화 약세를 부추겼다. 고질병인 막대한 미국의 재정적자 역시 달러화 투자심리를 약화시켜온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숱한 논란에도 주요 교역국에 관세폭탄을 퍼부은 것도 조선, 자동차 등 미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동맹국의 팔까지 비틀며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고 막대한 투자를 압박한 것도 그때문이다. 실제 최근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제조업체들 실적은 크게 개선됐다. 달러화 약세는 이 같은 미국 제조업체의 수출 경쟁력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사실상 수출 경쟁력에 동원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달러화를 요요처럼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며 “중국과 일본은 항상 위안화와 엔화 평가 절하를 하고 싶어하는데 그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달러 인덱스
미국은 의도적인 환율 개입이 아닌 자연스러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것이지만 최근 ‘제2 플라자 합의’나 ‘마러라고 합의’ 같은 미·일 공동 환율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묘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3일 미국 재무부가 이례적으로 시중은행에 대해 환율 수준을 체크하면서 시장 개입 정지 작업이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됐다. 달러화 약세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엔화 강세를 원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의기투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덕분에 원화값과 엔화값은 동반 급등했다.

달러화당 원화값은 28일(한국시간) 서울외환시장에서 전날 대비 23.7원 급등한 1422.5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지난해 10월 20일(1419.20원) 이후 약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해외주식 투자 비중을 낮추겠다고 밝힌 점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원화 강세가 장기간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 모두 달러화 약세와 엔화 강세를 지속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적이란 분석이다.

이날 오후 4시 도쿄외환시장에서 달러화당 엔화값은 전날보다 2엔 오른 152.6엔에 거래됐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이 “필요에 따라 미국 당국과 긴밀히 공조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발언한 게 엔화 매수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엔화 강세도 여파가 만만치 않다.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미국 주식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달러화 약세 정책은 수입 물가 압박이라는 부작용이 있다. 가뜩이나 관세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달갑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신용카드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심지어 전기요금까지 겨냥한 인하 압박에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금값은 온스당 5200달러를 돌파하며 연일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에 이어 도이체방크도 올해 금값이 온스당 60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달러화 하락과 금값 폭등을 두고 미국 일각에선 달러화 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달러화는 곧 안전자산이라는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시장이 미국 달러화를 헤지하기 위해 금을 사고 있다는 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사태보다는 일관된 경제 성장 어젠다를 제시해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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