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전세는 '로또'?… 서울 세입자들 '눈치전쟁' [왜 지금]
전세 품귀에 반전세 확산, 수도권까지 번진다
2030은 월세로 이동, 전세 사다리 무너진다
공급·세제·보호 ‘3종 개편’이 해법 될까

계약갱신청구권 확대와 반전세 확산, 다주택자 규제 강화까지 복합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전세 시장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전세의 종말’이라는 오래된 경고음이 다시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의 집계에 따르면, 이달 2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2079건으로 지난해 같은 날(2만9566건)에 비해 25.4%나 줄었다. 단순히 은근한 감소가 아니라 ‘증발’에 가까운 수준이다.
서울 주요 구별로 들여다보면 성북구(-86.6%), 관악구(-72.7%), 강동구(-67.1%) 등 저가형 전세 비중이 높던 지역일수록 낙폭이 깊다. 실거주 의무 부과와 대출 규제로 갭투자가 위축되면서, 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전세 물건이 희귀해진 탓이다.
전세 품귀의 그림자
코로나 이후 누적된 각종 부동산 규제가 작동한 결과, 전세 시장은 빠르게 말라붙고 있다. 갭투자 제한으로 다주택자의 회전 매물이 줄었고, 경기 침체로 신규 입주 물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급 파이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가 임대차 3법으로 보장한 계약갱신청구권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 계약 6만3028건 중 56%에 해당하는 3만5281건이 갱신권을 사용했다. 전년도(34.4%) 대비 급증한 수치다. 갱신권 행사는 임차인에게 최소 2년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새로운 전세 수요를 흡수할 ‘회전 매물’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구조적 변화 속에서 전세의 숨통을 트일 통로로 떠오른 것이 ‘반전세’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임대료를 절충하되,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로 일부 전환하는 형태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된 계약은 5275건으로 전년(2611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 ‘반전세’는 전세가격 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실제 체감 임대료 상승률은 공식 수치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수도권 주변도 긴장
서울발 전세난은 이미 수도권 외곽으로 퍼지고 있다. 경기 남부와 인천 등지에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흐름이 확산되며, ‘살 곳’을 찾아 도심을 벗어난 세입자들이 다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를 “실질 전세난의 2차 파도”로 부른다.
입주 물량 감소도 문제다. 올해 서울의 새 아파트 입주는 1만2000가구 안팎으로, 지난해(2만2000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대형 건설사의 분양 지연과 착공 취소, 미분양 증가가 연달아 얽히면서 신규 전세 공급 여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런 구조적 공급 위축은 향후 1~2년간 전세가격 상승 압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이 예고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조치가 변수다. 매도 대신 임대를 유지하려는 다주택자가 늘면 단기적으론 매물이 잠기고, 세부담을 전가하려는 임대인의 전세가 인상 요구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임차인의 체감 부담은 ‘통계 이상’
숫자로 표현되는 평균 상승률보다 생활 속 체감 격차는 더 크다. 서울 외곽의 한 임차인은 “2년 전 4억원 중반이던 전세가 이제는 6억원을 넘어섰다”며 “집값은 조정돼도 전세는 내릴 기미가 없다”고 토로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임차가구의 월평균 주거비 부담률(가처분소득 대비 월세 환산액)은 27.1%로, 사상 최고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선택이 서민의 경제적 안전망을 더욱 흔들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올해 전세가격의 전반적 상승세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갱신권 만료 물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돌아오고, 신규 입주 감소가 맞물리는 2분기 이후 전세가격이 재차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 비중이 늘면서 ‘전세 매물 희소성 프리미엄’이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이 묻는 질문, "전세 제도 지속 가능?"
이번 전세난은 단순한 공급 부족이나 규제의 일시적 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 자체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시중 금리가 높고, 집값 상승세가 예전처럼 급하지 않은 환경에선 전세보증금을 통해 수익을 얻는 임대인의 유인이 급감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금 마련 부담이 폭증하면서 ‘전세는 중산층의 제도’라는 기존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2030세대의 주거 전략 변화가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세 → 매매'라는 주거 사다리가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반전세 → 월세 → 분양 청약'으로 흐름이 변하고 있다. 사회 초년생이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는 대신, 월세를 감내하며 청약 가점을 쌓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다. 이는 전세 수요의 구조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과제, 규제 해소와 맞춤형 지원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는 먼저 공급 확대다. 공공임대와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병행해 중기적 주거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도심 접근성과 품질을 고려한 ‘직주근접형 임대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세제 정책의 재조정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양도세 부담이 시장 내 매물 회전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세금을 통한 ‘징벌’보다 정상적인 매매 흐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더불어 임차인 보호 장치의 실효성 제고가 요구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주거 안정을 돕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시장 유통량을 줄이는 부작용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갱신권 적용 이후 발생하는 시장 왜곡을 감시하며, 임대차 정보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전·월세 전환율에 대한 정책 관리도 필요하다. 최근 금리 하락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 월세 전환율이 과도하게 높게 형성되는 사례가 많다. 금융당국과 협업해 임대료 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저소득 임차인을 위한 보증금 대출 및 세액공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전세는 정말 사라질까?
전세는 여전히 한국 주거시장의 핵심 기둥이지만, 더 이상 ‘당연한 제도’는 아니다. 제도적 유지 비용이 커지고, 경제 구조가 달라진 지금, 전세는 점점 더 월세에 흡수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전세의 종말’이 아니라 ‘전세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시장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는 규제와 완화의 미세한 저울을 조정해야 하고, 세입자는 ‘버티기’ 대신 ‘적응’을 고민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가 한국 부동산의 상징에서 불안의 상징으로 바뀌고 있는 지금, 서울의 전세난은 단지 주거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