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틀 없는 나만의 다이어리 ‘불렛 저널’

이하은 2026. 1. 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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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칸 없이, 한 해를 빈틈없게

새해 필수템 ‘다이어리’
정해진 틀 스트레스 받아
한두 달 쓰다 버리기 일쑤

최근 ‘불렛 저널’ 급부상
백지 노트에 선과 표 그려
나만의 일상 기록 ‘인기’

주체적인 삶 설계 도구로
SNS 게시물 수십만 건
관련 문구류 매출도 급증

매년 12월~1월이면 서점과 문구점에는 다이어리를 고르는 사람들로 붐빈다. 새해 계획을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어두지만, 2월이 되면 빈 페이지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는 꼭 매일 쓸 거야”라는 다짐도 잠시, 바쁜 일상에 치여 책상 서랍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이런 ‘새해 다짐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최근 불렛 저널(Bullet Journal)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불렛저널’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수십만 건에 달하고, 관련 문구류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불렛 저널은 미국의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이너 라이더 캐럴이 2013년 고안한 수기 기록 시스템이다. 기성 다이어리와 가장 큰 차이는 ‘정해진 틀이 없다’는 점이다. 백지 노트에 자신에게 필요한 페이지만 만들어 쓴다. 매일 일기를 쓰지 않아도, 주간 계획이 필요 없어도 괜찮다. 사용자가 자신만의 시스템을 직접 설계한다.

김윤하씨의 불렛 저널. 오늘의 일정과 독서 감상문이 함께 적혀 있다.

◇“빈칸 보면 죄책감… 정해진 틀이 스트레스였어요”= 창원시에 사는 김윤하(25)씨는 매년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다이어리를 샀다. 서점에서 한참을 고민해 ‘올해야말로 끝까지 쓸 수 있을 것 같은’ 다이어리를 골랐지만, 늘 2~3개월 쓰다가 포기하기 일쑤였다.

“판매되는 다이어리는 매일 써야 하는 칸이 있잖아요. 바쁜 날은 못 쓰니까 빈칸이 생기고, 그러면 죄책감이 들어서 아예 안 보게 되더라고요. 주말엔 할 일이 별로 없는데 공간이 평일이랑 똑같으니까 낭비되는 느낌도 들고요.”

김씨는 특히 ‘날짜가 인쇄된’ 다이어리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월 25일 칸이 비어 있으면 ‘아, 그날은 못 썼구나’ 하고 계속 눈에 밟히잖아요. 며칠 건너뛰면 다시 쓰기가 더 어려워지고요. 결국 3월쯤 되면 포기하고 새 다이어리를 또 사거나, 아예 안 쓰게 되더라고요.”

최근 SNS에서 불렛 저널을 접한 김씨는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빈 노트에 직접 다 그려야 한다는 게 오히려 번거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제가 필요한 것만 만들어 쓰니까 훨씬 편하더라고요. 저는 오늘의 일정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은 물론 짧은 독서 감상문 코너도 옆에 써요. 어떤 달은 지출 관리가 필요하면 가계부 페이지를 만들고, 바쁜 달은 업무 일정만 간단하게 정리하고요.”

김씨의 불렛 저널은 월마다 구성이 다르다. 1월에는 연간 목표와 독서 목록 페이지를 만들었고, 2월에는 운동 루틴 체크리스트를 추가했다. 3월에는 업무가 바빠져 주간 일정표만 간단히 작성했다. “기성 다이어리였으면 1월 첫 주에 포기했을 텐데, 불렛 저널은 간단하게라도 계속 쓸 수 있었어요.”

인스타그램에 ‘#불렛저널’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다양한 사용자들이 자신만의 불렛 저널을 소개하고 있다.

◇문구업계 “백지 노트·스티커 매출 급증”= 문구업계도 이 같은 트렌드를 체감하고 있다. 주요 문구 브랜드들은 불렛 저널용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창원 상남동의 한 대형 서점·문구점 관계자는 “최근 2~3년 사이 백지 노트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특히 도트(점) 무늬가 있는 노트가 인기”라고 전했다. 도트 노트는 빈 공간에 선을 긋거나 표를 그릴 때 기준점 역할을 해 사용자들이 선호한다.

진해구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남정연(37)씨는 “예전엔 새해 시즌에 다이어리가 불티나게 팔렸는데, 요즘은 백지 노트를 찾는 손님이 많다며 “특히 2030 여성 고객들이 주로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불렛 저널 관련 소품 시장도 커지고 있다. 형광펜, 색연필,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등 꾸미기 문구류 매출도 상승했다. 남씨는 “불렛 저널 전용 스탬프나 스티커 세트가 잘 팔린다”며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뿐 아니라 체크박스, 화살표 같은 실용적인 디자인도 인기”라고 말했다.

◇“처음엔 단순하게, 점차 나만의 방식 찾아야”= 다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시작하라”는 조언이 따른다. SNS에 올라온 화려한 꾸미기를 따라 하려다 오히려 부담을 느끼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렛 저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불렛 저널의 핵심은 예쁜 꾸미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시스템 찾기”라며 “처음엔 할 일 목록만 써보다가 점차 자신에게 필요한 페이지를 추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초보자를 위한 팁으로 “첫 달은 정말 간단하게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월간 목표 한 페이지, 주간 할 일 목록만으로도 충분해요. 한 달 써보면서 ‘이런 페이지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게 생기면 추가하면 돼요.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면 지쳐서 포기하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처음엔 복잡하게 시작했다가 점차 간소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앞서 인터뷰한 김윤하씨도 “처음엔 SNS에서 본 것처럼 예쁘게 꾸미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금은 실용성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창원 상남동의 한 서점에서 고객이 다이어리를 고르고 있다. /전강용 기자/

◇기성 다이어리와 병행 사용도 하나의 방법= 직장인 김민경(25)씨는 업무용으로는 기성 다이어리를, 개인 목표 관리용으로는 불렛 저널을 사용한다. “회사 회의 일정 같은 건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기성 다이어리가 편하고, 운동 루틴이나 독서 기록 같은 건 불렛 저널로 관리해요. 둘이 역할이 다르죠.”

한 문구업계 관계자는 “불렛 저널이 다이어리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진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문구 시장 전체가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다짐’을 준비하는 사람들.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이 아닌, 스스로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한 해를 채워가는 것. 불렛 저널이 제안하는 새로운 다짐의 방식이다.

“완벽하게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불렛 저널의 철학은, 완벽한 계획보다 실천 가능한 계획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새해 다짐 단골손님들에게 불렛 저널은 단순한 노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빈 페이지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오늘 하루를 한 줄로 적어 내려가는 것. 그 작은 시작이 1년을 채우는 힘이 될 수 있다. 2026년, 당신만의 방식으로 다이어리를 채워 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이하은 기자 eundori@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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