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말은 발톱으로 걷는다

쟁기나 괭이 같은 농기구를 쟁여놓던 광 뒤 흙담에 매달린, 원통형 대나무 어리 안 길게 놓인 횟대에는 닭 몇 마리가 졸고 있었다. 둥그런 횟대에 올라 두 다리로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선 닭을 어린 나는 늘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중에 군 훈련소에서 외줄타기를 하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리던 경험까지 떠올리면 조류의 균형 잡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예가 아닐 수 없다.
닭의 발가락은 네 개다. 질척한 뒷마당에 어지러이 떨어진 단풍잎처럼 앞으로 셋, 뒤로 한 개 찍힌 발자국 모양을 떠올려보자. 닭은 이 발가락으로 횟대를 움켜쥔다. 바람에 날려 횟대가 흔들리거나 빙글빙글 돌아도 닭은 얼른 자세를 바꿔 새롭게 균형을 잡거나 아니면 옆으로 푸드덕 날아 가뿐히 착지한다. 닭 발은 인간의 발과 발생학적 기원이 같다. 또 당연한 말이겠지만 닭에게도 인간의 손에 해당하는 상동기관이 있다. 바로 날개다. 동물은 뒷발보다 더 많은 해부학적 융통성을 부여한 앞발에 진화적 참신성을 부여했다.
그렇게 동물은 인간과는 모양과 기능이 사뭇 다른 손(앞발)을 지닌다. 새와 박쥐의 손은 섬세한 날개를 형성하고 코끼리의 앞발은 나무줄기만큼 굵은 다리로 무거운 몸을 지탱한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구조는 같다. 다윈은 “물건을 움켜쥐도록 만들어진 사람의 손, 땅을 파도록 만들어진 두더지의 손, 말의 다리, 그리고 박쥐의 날개가 모두 같은 구조로 되어 있고, 같은 뼈들이 같은 상대적 위치에 배열되어 있다는 것만큼 신기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양한 동물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는 사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제 다시 질문해보자. 닭 날개에는 몇개의 손가락이 있을까? 2011년 예일대 연구팀은 <네이처>에서 그 수가 3개라고 명토 박듯 말했다. 손가락은 손바닥 앞에 있는 유형의 구조물을 뜻한다. 사지동물의 기본형인 다섯 개의 손가락은 갖가지 동물로 분화해 나가는 동안 그 수를 유지하거나 혹은 줄이기도 했다. 뱀은 다리가 없으니 아예 손가락이 없다. 판다는 다섯 개의 손가락에 엄지가 하나 더 있지만, 그것은 대나무를 쥐기 위해 팔목에서 불거져 나온 ‘가짜 엄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판다의 손가락은 인간처럼 다섯 개가 맞다.
놀랍게도 이 다섯 개의 손가락은 각기 다른 다섯 종류의 줄기세포에서 자라난다. 셋밖에 없는 닭 날개 뼈의 기원이 연구 주제가 되는 것도 이런 연유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유전적으로 엄지가 될 뼈가 검지 자리에 자라났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는 네 개의 닭발 가운데 어떤 것이 엄지에 해당하는지 알지 못한다.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말의 발가락이다. 에오세 초기인 약 5000만년 전에 등장한 말의 조상은 다리를 길게 늘이고 발가락 수를 줄임으로써 초원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동물로 진화했다. 발가락 수가 홀수라 기제류에 속하는 말은 가운뎃발가락을 뺀 나머지를 깡그리 없애버렸다. 게다가 하나뿐인 발가락도 한껏 길게 늘여 우리 발목에 해당하는 뼈가 말의 무릎까지 올라갔다. 이런 해부학적 차이가 말 걸음걸이의 성격을 규정한다. 똑같이 땅 위를 걷는 사지동물이라고 해도 걷는 방식은 동물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은 26개로 구성된 발뼈 전체를 써서 발바닥으로 걷는다. 이런 걸음걸이는 느리지만 안정감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개와 고양이는 발가락으로 걷는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다는 뜻이다. 아킬레스건에 저장된 탄성으로 땅을 박차며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코끼리는 그 중간쯤이어서 뒤꿈치가 살짝 떠 있고 발가락과 발바닥 앞부분을 써서 걷는다고 한다.
말은 발가락 끝으로 걷는다. 우리 손가락 끝마디와 기원이 같은 발굽 뼈로 질주할 때는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자유로운 두 손으로 먹거리를 들고 다니기 위해 또는 똑바로 선 채 식량을 채취하기 위해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는 인간은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야생말을 가축화한 뒤 그 빠름을 취하여 자신의 약점을 보완했다. 활모양으로 구부러진 척추 덕택에 몸의 무게 중심을 위로 올린 인간은 발바닥을 온전히 땅에 대고 걷는다. 자연스럽게 목을 돌리면 함께 걷는 사람과 헐벗은 나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소한 대한 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곧 입춘(立春)이다. 병오년 치의 봄이 털 붉은 말을 타고 저만치에서 성큼성큼 들어온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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