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원칼럼] 지속 가능한 동네의 조건

지속 가능한 동네, 커뮤니티는 무엇이고, 그렇게 되려면 어떡해야 할까? 비록 사람은 한 세대를 살고 떠나지만, 동네라는 공간과 장소는 오랜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져 존속되는 곳이고, 여러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일상생활의 터전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양육 받고, 학교와 직장에 다니며, 결혼 후, 아이 낳아 키우고, 은퇴 후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동네에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대부분은 생애 단계별로 다른 동네에 들어가서 사는 게 보통이다.
원주민은 나보다 오랫동안 정착해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도시화한 현대사회는 기본적으로 이동이 잦다. 양육 받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자기가 살던 동네를 떠나 직장을 갖게 되고, 결혼 후에도 자기 동네를 떠나 또 다른 동네에서 산다.
공동주택이 확산하면서 동네라는 의식이 점차 퇴색해 가고, 동네라는 공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기도 하다. 혹자는 동네라는 테두리에 사람들을 가두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사회연대와 협력의 측면에서 보면 동네,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무시하기 어렵다.
태어난 집과 동네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는, 학업을 위해서 집과 동네를 떠나는 경우다. 초, 중, 고등학교는 학군이 있지만, 대학부터는 다르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집과 동네에서 대학에 통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수도권 안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면, 효자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에서 학교에 다니는 관계로 경비를 줄일 수 있어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일과 결혼을 이유로 집과 동네를 떠나는 경우다. 집과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대부분은 직장 가까이 원룸이라도 얻어서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후,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나 독립한 새로운 가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도 신혼집을 장만할 여력이 없어서다.
은퇴 후의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집과 동네를 떠나는 경우다. 자신이 살던 동네를 등지고 집을 줄여서 가거나 주변 지역으로 이주해서 거주비를 줄이는 일도 있다. 나이가 들어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면 요양병원, 요양원 등의 신세를 지게 되거나 아니면 실버타운이든 은퇴자 마을 등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 나선다.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요즘 우리 사회도 은퇴자 마을 조성에 관심이 늘고 있다. 은퇴자 마을은 고령층을 위한 주택과 의료, 돌봄, 문화 체육, 생활 편익 시설을 갖춘 커뮤니티를 말하는데, 미국의 지속 케어 은퇴 커뮤니티(CCRC)와 비슷한 형태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골드 시티는 은퇴자 마을 조성과 수도권 주택 다운사이징 효과를 염두에 둔 사업인데, 은퇴자가 소유한 주택을 증여하거나 매각하고, 지방의 저렴한 주택으로 이주하면, 서울에서는 주택 1채가 더 공급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최초로 골드 시티를 조성하는 춘천시는 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이미 민관합동 전담반을 구성하고, 근교형 은퇴자 마을을 조성하는 중인데, 이미 발의된 '은퇴자 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한다면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사회 문제에 대응해서 국가든 지자체든 공공기관이든 다양한 해법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시장(市場)에서 해결이 안 되거나 시장을 선도하는 사업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고령자 문제와 국한해 보면, 별도의 커뮤니티나 시설을 공급하여 운영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돌봄 프로그램이 점차 확산해 가는데, 이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확대해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에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이의 정서적 성장 과정에서는 부모는 물론이고 친척과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연대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를 '한 노인을 돌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사회가 가져다준 사회 문제는 매우 심각한데,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어디를 가든 늘어나는 건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뿐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노인들이 시설로 내몰리는 현상이 일상화되었지만,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에서 노후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자신이 살던 익숙한 동네에서 오랜 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노후를 안정적으로 지내는 정주 환경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한 동네로 가는 길이다.
동네, 커뮤니티마다 주민자치센터, 문화복지행정센터 등이 주관하는 문화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데 비해, 보통 사람은 접근조차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의 주민자치센터에 확인해 보니 소문 그대로다. 은퇴자들을 포함해서 고령자들은 여유 시간은 많지만, 막상 신청하려고 하면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동네, 노인들이 노후 생활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커뮤니티, 이런 동네, 커뮤니티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속 가능한 동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서충원 전 강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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