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맞는 날 올까요?’…살처분에 떠는 꼬꼬닭의 애원
넉달새 442만 마리 희생…방역 개선 여론
화성 산안마을 중심으로 시민협의회 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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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면 ‘서해안 벨트’(경기 남서부·충청·호남권) 산란계 농가들은 바짝 긴장한다. 철새와 함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바이러스도 이동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대부터 세종시에서 40여년간 양계를 해온 ㄱ씨도 마찬가지다. 산란계 15만마리를 기르는 그의 농장에서도 지난해 3월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이 일어나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해야 했다. 2017년에도 한차례 살처분을 겪었던 그는 좌절했다. “자식 같이 키우던 닭들인데… 솔직히 겨울철 6개월(전년도 9월~이듬해 3월)은 밤에 잠도 잘 안 와요.”
조마조마한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겨울 국내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전파력·감염력이 10배 이상 강력한 것으로 나타나 축산 방역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38개 농가가 감염됐고, 산란계 약 442만5000마리가 감염·예방 목적으로 살처분됐다고 집계한다.

닭을 ‘자연친화적’으로 기른다는 동물복지농장에도 바이러스가 덮쳤다. 경기도 화성시 ‘산안마을농장’(산안마을)은 지난해 11월23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닭 4만마리를 살처분했다. 산안마을도 지난 2021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살처분이다. 주변 2㎞ 내 산란계 농가 11곳에서도 살처분이 진행됐다고 한다. 이경묵 산안마을 팀장은 한겨레에 “‘이건 자연재해구나, 인간이 애써봐도 한계가 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농장 안 모든 길을 매일 소독하고 농장 안팎, 계사 출입 땐 방역을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했는데… 치열하게 대응한 농가일수록 무력감이 들죠.”
산안마을과 화성·평택·천안 일부 산란계 농가를 중심으로 ‘살처분 반대와 백신 도입을 위한 시민협의회’가 꾸려지게 된 배경이다. 이들은 지난 21일 ‘차가운 땅속으로 사라지는 비명,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호소문을 내고 시민들에게 농가의 사정을 알리기 시작했다. 산안마을은 ‘작전명 수탉’이라는 별도의 팀을 꾸려 국내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현황과 추이, 정부 방역대책, 해외 사례를 조사한 보고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대유행과 한국의 관리체계’도 공개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살처분 중심 통제’ 방역 대책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이를 △백신과 감시가 결합된 체계로 전환하고 △예방적 살처분이 가리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감염률 데이터를 온전히 공개해 △농가의 방역 실책을 찾아 보상액을 감액하는 ‘징벌적 보상 체계’를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중 풍토병화에 대비하는 ‘백신 도입’은 지난 2020년 전세계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대유행하면서 본격화된 주장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가 2023년 총회에서 “고품질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을 하나의 방역 수단으로 인정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지난해 관련 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국가들에서 이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된다. 이에 대해 정부 쪽은 바이러스 변이, 무증상·잠복 감염 우려와 백신의 불완전성 탓에 신중한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관계자는 한겨레에 “일명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일본에서도 백신 도입은 안 하고 있다. 단기적 피해 저감은 있지만 백신 도입의 효과가 명확하게 밝혀진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찬반은 뚜렷하게 대립한다. 송치용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바이러스 변이’가 백신 도입을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5년께부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접종을 시작하는 등 20년간 백신을 개발해왔기에 현재 변이형 발생 이후 백신 개발부터 농가 보급까지 3개월이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백신 도입을 검토하지 않았던 네덜란드,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백신 체계를 연구·개발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백신 개발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최강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농림축산검역본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역학조사위원회 위원장)는 “백신 접종은 ‘소탐대실’ 측면이 있다”며 “감염 개체 구별이 즉각적으로 어려워 ‘조용한 감염’으로 인해 자칫하면 통제를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질병이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국내에는 백신 접종 개체와 외부 바이러스 감염 개체를 구별할 수 있는 검사 도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체 검사에서 백신 접종 개체와 감염 개체를 구별할 수 있는 백신과 진단법을 2027년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 관계자는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백신 접종 여부는 성급하게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개발 상황과 해외 접종 사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의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백신이 성공해도 문제가 끝나진 않는다. 과연 백신 접종한 닭이 낳은 달걀을 기존 유통망에 포함할지 분리할지,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등 복잡한 논의들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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