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부자 한국청소년연맹 이사 “청소년을 바꾸려 하지 말고, 늘 믿어주고 응원해 주세요”

손혜림 2026. 1. 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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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교직 생활 어려운 학생 도와
정년 퇴임 후 22년간 청소년 봉사
상담실·학교밖지원센터 등서 활동
현장과 정책 잇는 가교 역할 할 것

“22년간 청소년 봉사에 제 삶을 바치며 지켜온 가치는 단 하나, 청소년을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지난 21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부산시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만난 한국청소년연맹 김부자 이사는 “청소년을 바꾸려 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늘 곁에서 응원하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약 4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22년간 청소년 봉사에 투신한 김 이사가 지켜온 가치이자 원칙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청소년을 ‘문제’로 바라본 적 없다”며 “방황하고, 실수하고, 때로는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간절히 살아내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교직 생활 동안에도 어려운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교감으로 부임하던 시절, 3분기까지 공납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 대신 내주기도 했었다”며 “교장으로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학력이 향상되거나, 질서와 청결을 잘 지키는 학생을 선발해 매달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회상했다.

교사 시절, 평소보다 유난히 어두운 모습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 학생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 일이 지금의 인생을 만든 전환점이 됐다. 처음에는 괜한 걱정이라 여겼지만 학생은 실제로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던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김 이사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건 순간이 지금까지 이어진 봉사의 출발점이었다”며 “교사의 관심이 한 학생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교실 안에서의 관심이 한 생명을 붙잡을 수 있다면, 학교 안팎으로 그 관심이 끊어져서는 안 된다”며 “이후의 삶은 자연스럽게 청소년 봉사와 상담 현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년 퇴임 후 곧바로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김 이사에게 퇴임은 20여 년 봉사 여정의 시작이었다. 2005년 정년 퇴임과 동시에 청소년 상담실 소장으로 부임하며 봉사를 시작했다. 청소년 상담실은 한국청소년연맹 산하로, 1983년 부산과 서울에 각각 설치됐다. 당시 김 이사를 포함한 5명이 전부였던 상담실은, 현재 60명의 상담사가 활동하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로 성장했다.

김 이사는 사회적 편견과 달리 현장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주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상 교육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학교 밖에 머무르기도 한다. 문제아로만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며 “적절한 계기가 주어지고 지원이 있다면 학업에 복귀할 분명한 욕구를 가진 청소년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한때는 부군과 함께 서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우부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그러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현실적인 한계도 만나며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딱 하나 이루지 못한 꿈은 장학재단 설립”이라면서도 “대신 이곳에서 헌신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김 이사는 앞으로 청소년 현장과 정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건전한 미래 세대 육성에 작은 밀알이 되겠다는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끝까지 다하고 싶다”며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일이 제 마지막 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