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쓰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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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발을 짚고 와서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제가 축구를 좋아하거든요. <싱어게인4> 촬영이 끝나고 오랜만에 뛰었는데 십자인대가 끊어졌습니다. 누가 태클 걸었던 건 아니고 혼자···. 오늘 어렵게 왔습니다.
연말연시는 어떻게 보냈어요?
계속 집에만 있었어요. 수술하고 얼마 안 됐을 때라, 지금보다 움직이기 힘들었거든요.
집에서는 주로 뭐 하나요?
<무한도전> 틀어놓고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정말 그냥 있어요.
매거진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셨죠. 그런 점에서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이영훈이라고 합니다.
가끔 은행이나 관공서 가면 직업을 써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 뭐라고 쓰나요?
'무직'이라고 씁니다. 직업란에 '가수' '뮤지션'을 쓰려면 민망하더라고요.
2012년 첫 정규 앨범이 나오고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은 <싱어게인4>가 처음이잖아요. 출연까지 여러 고민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컸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음악, 혹은 이영훈이라는 사람이 가진 스타일이 아무래도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딘가에 얼굴이 알려지는 일이 체질에 잘 맞지 않기도 하고요.
얼마나 오래 무기력했나요?
못해도 5년은 됐을 거예요. 어쨌든 제 직업이 음악가잖아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도 하면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더 이상은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정말 즐거운데, 무대에 올라가기까지가 힘들었어요. 음악 작업은 손도 안 댔고요.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1년에 한두 번 정도 생계형으로 공연을 했죠.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었을까요?
길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번아웃이라고 하기에는 제가 그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지는 않거든요.(웃음)
방송에서도 무력감 때문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는데, 그 문제는 해결됐나요?
당연히 해결이 안 됐고요.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기력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어요. 하지만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오늘 인터뷰 자리에도 그 마음 때문에 나올 수 있었고요.
<싱어게인4> 첫 무대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348만 회를 넘겼더라고요. 일상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평소 자주 가던 음식점 사장님들이 TV에 나온 저를 보셨는지 알은체해주시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이케아에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알아봐주시고, 붕어빵 사러 가서도 한 마리 서비스 받았어요.
뭐라고 인사를 하던가요? "55호?"
첫말은 거의 다 똑같아요."맞죠?"
그럼 기분은 어때요?
감사하고 민망합니다. 이제는 공연을 해온 지도 오래되다 보니 거의 오시던 분들, 이를테면 단골손님이라고 할 만한 분들이 주로 오시거든요. 그 때문에 그분들도 저의 성향을 대충은 아셔서 길에서 가끔 만나도 힐끗 보고 그냥 가세요. 공연장에 미리 오거나, 공연 후에 기다리는 일 없이 딱 시간 맞춰 오셔서 끝나면 칼같이 귀가하십니다.
그것도 일종의 이영훈 팬덤 문화겠네요. 이번 <싱어게인4> 첫 무대에서 부른 곡이 '일종의 고백'이었죠. 첫 무대인 만큼 선곡 기준이 궁금했습니다.
사실 제가 고른 건 아니었어요. 제가 속했던 조는 각자 자신의 유명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슈가맨 조였거든요. 제 노래 중에 유명한 곡이라면 '일종의 고백' 하나뿐이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여담이지만 저는 <싱어게인4> 출연을 결심했을 때 '일종의 고백'을 부르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히트곡만큼은 부르지 않겠다. 이유는요?
'나한테는 이 노래뿐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이 노래를 안 부르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보기 좋게 불러버렸어요. 그래도 반응이 좋아서 흡족했습니다.
만일 본인 의지대로 선곡했다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요?
글쎄요. 지금 잠깐 고민을 해보자면 패자부활전에서 부른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노래니까.
"방송에 출연한다고 무기력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어요.
하지만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가수들도 '잘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라면 음가의 범위가 넓지 않은, 기승전결이 흐릿한 노래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도 비슷합니다.
장르로 따진다면요?
1990년대 우리나라 가수들이 부른 포크나 발라드가 아닐까 싶어요.
인터뷰 때 정말 안 하려는 질문이긴 한데요. MBTI가 혹시?
ISTP입니다.(웃음)
ISTP가 전형적인 가수 체질은 아닐 듯한데요. 노래는 어쩌다 처음 부르게 됐나요?
저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줄은 전혀 몰랐고요. 제 돈을 주고 CD를 처음 산 것도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아마 조규찬의 6집이었던 것 같은데. 곡을 처음 만들게 된 건 첫사랑 때문이었어요.
첫사랑이라.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계속해주시죠.
저는 첫사랑이 조금 늦었어요. 군대를 다녀온 후였는데요. 동네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게 멈춰지는 나이는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계속 좋아하다가도, '이건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왔죠. '좋아한다'라는 말은 했으니까, 이제 '그만 좋아하겠다'라는 말도 해야 될 것 같았어요. 그때는 그랬죠.
그분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네요.
그럼요. 그런데 '이제 그만 좋아하겠다'라는 걸 말로 하려니 조금 이상하고 웃길 것 같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그럼 노래로 만들어서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저는 음악 전공자도 아니거든요. 노래를 겨우겨우 만들어 집에서 녹음해서 갔죠.
피드백이 궁금한데요.
그렇게 감동적인 피드백은 없었고요. 그냥 재미있어했어요.
지금 그 곡이 디스코그래피에 있나요?
있습니다. '안녕, 삐'라는 곡인데요. 제1집 앨범 <내가 부른 그림>에 있습니다.
대학은 진학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20대 때는 주로 어떻게 보냈어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군대에 갔고요. 다녀와서는 친구들이랑 맨날 축구만 했어요.
축구 포지션이 어떻게 되죠?
원래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요.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뒤로 밀려났어요. 지금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만 여쭤보려 했는데 질문을 바꿔볼게요. 가장 좋아하는 가수와 축구선수는?
축구선수는 지네딘 지단을 가장 좋아합니다. 축구를 가장 아름답게 했던 선수라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유재하. 만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도 답변할 수 있다면 김활성 선생님을 꼽고 싶어요. 제가 미션스쿨을 나왔어요. 당시에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했는데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학교에 있는 교회 찬양반에서 활동하면 봉사활동을 안 해도 된대요. 그 일념 하나로 찬양팀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에요. 지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입니다.

이번 <싱어게인4>에서 총 다섯 무대에 올랐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가장 아쉬움이 남는 무대를 골라본다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3라운드에 부른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처음으로 제가 원하는 노래를 부른 무대였어요. 가장 아쉬웠던 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경연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나 봐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요. 평소 안 하던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욕심이었던 거죠.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무대 댓글 중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고음과 가창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분.' 이영훈이 생각하는 '노래 잘하는 가수'의 기준이 궁금했어요.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고음, 가창력, 화려한 테크닉에 귀가 조금 지쳤나 봐요. 물론 그 노력과 수고는 대단하죠. 다만 제게는 감동으로 와닿지 않더라고요. 그걸 할 줄도 모르고,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렸어요. 저는 노래와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 좋은 가수는 결국 이야기를 잘 전달할 때 완성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막연한 질문이지만, 노래는 어떻게 하면 잘 부를 수 있나요?
제가 이 질문에 답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사실 노래가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노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요. 분명히 음악만이 지닌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늘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만드는 것. 뭐가 더 즐거운가요?
엉뚱한 답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뒤풀이가 제일 좋아요. 공연 끝나고 하는 뒤풀이. 그 뒤풀이를 하려고 노래도 만들고 공연도 한다고 생각해요.
성격상 뒤풀이 싫어할 것 같은데.
뒤풀이한다고 제가 갑자기 소주병 들고 노래 부르는 건 아니고요. 고깃집에 둘러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냥 좋아요. 내가 네 고생을 알고, 네가 내 고생을 아니까. 그런 사이끼리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겁죠.

"사실 노래가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노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요.
분명히 음악만이 지닌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가사 때문에 이영훈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평소 가사는 어떻게 쓸지도 궁금했어요.
그때그때 기억하고 싶은 어떤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메모를 해놔요. 그리고 노래를 만들 때 가사로 쓸 만한 것들을 찾아서 활용하죠. 제가 상상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경험 위주로 씁니다. 혹여 나중에 설명하고 변명하고 설득해야 되는 것들이 걱정돼서, 제가 아는 것만 쓰려고 해요.
요즘 어떤 음악 듣나요?
진짜 민망하지만 제가 음악을 정말 안 듣습니다. 스마트폰에 음악 앱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는 사람이 음악을 냈다고 하면 한 번씩 찾아 듣는 정도예요.
원래대로라면 다음 질문으로 평소 어떤 장비로 음악을 듣는지 여쭤보려 했어요.
저는 스마트폰 스피커나 에어팟으로 들어요.
장비로 유난 떠는 스타일은 아니네요.
귀가 예민한 편은 아니에요. 제가 평소에 인이어를 안 쓰는데, <싱어게인4>에서 정말 오랜만에 써봤거든요. 그것도 없어서 친구한테 빌렸는데, 비싼 것과 싼 제품의 차이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그래도 집에 기타는 여러 대 있을 것 같아요.
기타는 딱 두 대 있습니다. 오늘 가져온 나일론 기타 한 대, 집에 있는 어쿠스틱 한 대. 오늘 가져온 건 야마하인데 모델명은 잘 모르겠네요. 비싼 건 아니에요. 그마저도 관리를 잘 못해서 여기저기 터져버렸어요. 그래도 이번 3라운드에서 이 기타로 무대는 잘 마쳤어요.
악기 욕심도 없다. 그럼에도 욕심부리는 물건이 있다면요?
진짜 없긴 한데요. 그나마 운동화랑 축구화?
축구를 정말 좋아하네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음악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은?
그건 늘 느껴요. 전 너무 게으른 사람이라, 음악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굶어 죽었을 수도 있어요. 정말 운 좋게 아직도 제 음악을 들어주시고, 공연을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지금처럼 잘 먹고살 수 있게 됐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음악 하길 잘했다 생각합니다.
요즘 이영훈에게 원동력이 되는 게 있을까요?
우울한 대답이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그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영훈은 스스로 어떤 장르 뮤지션이라 여길지도 궁금했어요.
그간 장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할 말이 없었어요. 장르는 제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맨날 대충 대답을 했는데요. 그럼에도 그간의 데이터를 종합해본다면 발라드와 포크의 중간쯤 아닐까요? 아주 큰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이영훈이 어느 날 갑자기 록을 하진 않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들었던 곡들은 록입니다. 제가 처음 기타를 제 돈 주고 산 계기가 있어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거기서 기타 치는 톰 모렐로가 정말 멋있더라고요. 홀딱 반해버렸죠. 모은 돈으로 낙원상가에 가서 텔레캐스터 사와서는 스트랩을 엄청 짧게 하고 흉내도 내고.
이영훈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고민해봤어요. 이것저것 써보다가 결국 다 지우고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쓸모가 있는 음악이라면 좋은 음악이 아닐까.
만일 제가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나 뮤지션이 돼야겠다' 결심을 했어요. 문자로 '저 음악 만들어야겠어요.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한다면 어떻게 답장해주시겠습니까?
'일단 만들어보시라. 만들고 나서 다시 연락하시라.'
ISTP···. 오늘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이영훈이 만드는 음악은 어떤 음악이길 바라나요?
저의 바람인데요. 시간이 많이 지나고 언젠가 저도 세상에서 사라질 텐데요. 그때 제가 만든 음악들이 어딘가에서 쓸모 있는 음악으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카페 배경음악이든, 혼자 흥얼거릴 때 부르는 노래든 뭐든 좋아요. 단 한 명에게라도 쓸모 있는 음악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Feature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신동훈
Hair&Make-up 유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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