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파격…미등록 이주민 50만명 합법화

정의길 기자 2026. 1. 2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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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폭력적인 불법이민 단속 등 서방 국가들이 이민에 문을 잠그는 와중에서 스페인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파격적 조처를 발표했다.

스페인 정부는 27일 최소 50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대규모 합법화 계획을 발표했다고 비비시와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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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체스 총리, “이주민은 발전과 번영의 원천”…보수 야당 반발
스페인의 연립정부에 참가한 좌파 연합 포데모스는 미등록 이주민의 합법화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 선거 유세 중인 포데모스의 당원들. AFP 연합뉴스

미국에서 폭력적인 불법이민 단속 등 서방 국가들이 이민에 문을 잠그는 와중에서 스페인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파격적 조처를 발표했다.

스페인 정부는 27일 최소 50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대규모 합법화 계획을 발표했다고 비비시와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엘마 사이스 포용·사회보장·이주 장관은 “오늘은 우리나라에 역사적인 날”이라 이번 조처가 “인권·통합·공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경제성장과 사회적 결속과 양립 가능한 이주 모델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 정부는 △2025년 12월31일 이전에 스페인에 도착했고 △최소 5개월 이상 스페인에 실제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범죄 경력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이번 합법화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난민 신청을 한 이들도 포함될 수 있고, 이미 스페인에 살고 있는 자녀도 대상이 된다.

이런 조건을 가진 이주민들이 신청해서 승인되면 최초 1년짜리 거주 허가를 받고, 이후 갱신을 통해 체류를 연장할 수 있다. 이 허가를 받으면 스페인 전역에서 어떤 사업체에서든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 허가도 함께 부여된다.

사회당 주도의 연립정부는 “이주민은 경제에 필수적인 존재”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이번 조처는 노동력 확보, 시장 확대를 하면서 인권도 확장하려는 좌파 연립정부의 20년만의 대대적인 이민 합법화 정책이다. 이번 조치는 내각이 왕실령으로 승인해서, 통상적인 법률안처럼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도 즉시 발효될 수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전날 미등록 이주자 합법화를 오래 전부터 요구한 급진좌파 포데모스와 이 조처를 합의했다. 포데모스는 지난 2023년 사회당 정부 출범 때 연립정부에 참가했으나, 곧 탈퇴했다. 이번 합의로 포데모스는 의회에서 사회당 정부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이번 조처는 시민 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돼 온 대규모 이주민 합법화 입법 제안을 정부안으로 흡수한 것이다. ‘지금 당장 합법화’ 캠페인으로 불린 이 시민입법 제안은 2021년부터 추진되어, 약 70만 명의 서명과 900여 개 단체의 지지를 얻었으나 오랫동안 의회에서 계류돼 왔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주민을 “스페인을 위한 부, 발전, 번영의 원천”이라며 특히 사회보장에 대한 재정 기여를 강조해 왔다. 포데모스의 이레네 몬테로 전 장관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인종차별에 대한 해답”이라며, 미등록 이주민을 ‘그림자’에서 끌어내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차별·혐오를 줄이는 길이라고 주장해 왔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푼카스에 따르면, 스페인의 미등록 이주민 수는 2017년 약 10만7400여명에서 2025년 83만8천여명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런 급증세는 콜롬비아 페루 온두라스 등 중남미에서 이주가 늘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 약 5천만명인 스페인에서 약 50명 중 1명이 불안정한 지위의 이주민인 셈이다.

스페인은 양호한 성장세로 농업·관광·서비스·돌봄산업 등에서 이미 이주 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이 분야들은 스페인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외국인 노동이 스페인의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의 연구를 내놓았다. 스페인은 지난해 성장률은 약 3%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며, 최근 몇 년간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고질적인 실업률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주민들은 코비드19 봉쇄 시기에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필수 노동을 맡아서, 스페인 시민사회에서는 이주민들이 “이미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데 법적 지위는 없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2021년부터 이주민·좌파·가톨릭 교회 등은 연대해서 이주민 합법화 시민입법을 벌였고,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이번 조처로 스페인의 노동 및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된다. 새 이주민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이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합법화 → 세금·사회보장 기여 확대 → 성장·재정 건전성에 도움”이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보수 야당 쪽에서는 이주민 합법화 정책에 나서고 있다.

보수 성향인 국민당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대표는 이번 합법화가 “(불법이주민) 유입을 부추기고 끌어당기는 효과를 키워서 공공 서비스를 감당 못 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극우 정당인 복스의 대변인 페파 미얀은 이 조치를 “우리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행위”라 규정하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해서 막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현재 폭력을 동반한 불법이민 단속이 벌어지고, 유럽의 주요국들도 입국 규제 강화, 추방 확대 등 이민을 규제하고 축소하지만, 스페인만이 “합법적 귀속과 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예외적 노선을 걷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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