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 달러의 추락…4년 만의 최저, 신뢰에 '빨간불'

김상윤 2026. 1. 2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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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책 불확실성·금리 인하 기대에 달러 약세 가속
미·일 엔화 개입설까지 겹치며 ‘정책 신뢰 프리미엄’ 흔들
금값 최고치·자산분산 움직임 확대…안전자산 지위 시험
“셀 아메리카는 아직” 신중론 속 달러 방향성 갈림길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달러화가 연초부터 다시 거센 역풍에 휩싸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행보, 연방준비제도(Fed)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대, 미·일 외환시장 공동 개입 가능성, 여기에 지정학적 긴장까지 겹치며 달러를 떠받쳐온 ‘정책 신뢰 프리미엄’이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5.55선까지 밀리며 2022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사흘간 낙폭은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명명한 대규모 관세를 전격 발표한 뒤 미국 주식·채권·달러가 동반 급락했던 국면 이후 가장 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이오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달러가치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보라. 달러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언급한 게 달러 낙폭을 키웠다. 달러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시장에 던진 것이다.

그는 이어 “달러가 스스로의 수준을 찾아가도록 두고 싶다”며 “그것이 공정한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시장은 이번 달러 약세를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정책·정치·지정학이 동시에 흔드는 복합 충격의 결과로 보고 있다.

미국 달러 지폐를 세는 기계가 작동하고 있다. (사진=AFP)
“즉흥과 충돌의 정치”…달러를 갉아먹는 정책 리스크

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외 정책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이다. 최근 그린란드 장악 시사, 유럽 동맹국을 겨냥한 추가 관세 압박, 캐나다에 대한 사실상 무역 봉쇄 경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기소 추진 언급,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승인까지 강경 발언과 조치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해 동안 무역·외교 정책의 급격한 변화와 연준 독립성을 흔드는 언행,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가 겹치며 달러 가치는 연간 9% 넘게 하락했다. 이는 2017년 이후 최악의 연간 성적이다. 올해 들어서도 달러는 유로화, 파운드화, 스위스프랑 등 주요 통화 대비 뚜렷한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프린시펄자산운용의 시마 샤 글로벌 전략가는 “이 상황을 단순한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트레이드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달러에 불리한 요인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한 방향으로 응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화정책 환경도 달러에 우호적이지 않다. 시장은 연준이 올해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BOE)은 금리 동결은 물론 추가 긴축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이는 글로벌 자금의 시선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지역으로 돌리며 달러 보유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금리 격차 축소는 달러 자산을 들고 갈 유인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연준 리더십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겹쳤다. 파월 의장은 오는 5월 임기를 마친다. 최근 온라인 베팅 시장에서는 블랙록의 채권 부문 최고책임자인 릭 리더가 차기 연준 의장이 될 가능성을 50% 수준까지 반영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상대적으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ING의 크리스 터너 글로벌 마켓 총괄은 “연준 인선 불확실성 자체가 달러 약세의 또 다른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미·일 공동 개입 가능성이 달러 하락을 재촉하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지난주 미 재무부와 공조해 주요 외환 거래 데스크에 접촉했다. 이는 통상 직접 개입에 앞서 이뤄지는 ‘환율 점검(rate check)’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엔화는 달러당 153엔대까지 급반등하며 한때 3% 가까이 뛰었다. 엔화는 여전히 지난 1년간 달러 대비 약 13% 약세 상태지만, 시장은 미국 당국이 엔화 급락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레프테리스 파르마키스 외환 전략가는 “외환시장 개입설은 행정부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하락 흐름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데이터:마켓워치, 종가기준)
흔들리는 ‘절대 안전자산’…금·엔·유로로 분산

달러에 대한 불안은 다른 자산 가격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금값은 1월 들어 18% 넘게 급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100달러를 넘어섰다. 일본 국채 시장에서는 장기금리 급등으로 변동성이 확대됐고, 그 충격이 미 국채 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계도 커지고 있다. 로열런던자산운용의 트레버 그리섬은 “금 강세와 달러 약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즉흥적이고 충돌적인 정책 결정에 대한 시장의 근본적 불신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서는 미국 비중을 줄이고 지역 분산에 나서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다이와캐피털마켓의 크리스 시클루나는 “많은 운용사들이 미국 시장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었다고 느끼고 있다”며 “점진적인 디레버리징과 지역 분산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취임 이후 S&P500 지수 상승률은 약 15%에 그친 반면, 한국 코스피는 약 95%, 일본 닛케이는 40%,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약 30% 상승했다.

물론 달러 패권의 붕괴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무역가중 달러 지수의 하락 폭은 지난 12개월간 약 5.3%에 그친다. 미국의 실제 교역 상대국 비중을 기준으로 달러 가치를 계산하는 이 수치는 유로·엔 등 선진국 통화 대비 달러 약세가 두드러진 반면 중국·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에 대해서는 하락 폭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터너 ING 글로벌 마켓 총괄은 “2월로 접어들면 계절적으로 달러 수급 여건이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자체를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국면은 아직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노무라의 도미닉 버닝 G10 외환 전략 책임자는 “올해 달러 약세의 본질은 경기 둔화보다 정책과 지정학적 요인에 있다”며 “달러는 지금 방향성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달러 가치 하락 걱정 안 해…아주 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그는 “달러를 요요처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비유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과거 중국과 일본이 통화 가치를 낮추려 했다고 재차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은 항상 통화를 절하하려 했다. 엔화와 위안화를 계속해서 낮추려 했다”며 “통화를 절하하면 경쟁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말해왔다”고 밝혔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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