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정치' 끝장낼 차별금지법, 국회 통과시키려면
좌절된 역사의 복기, 종북몰이에서 혐오정치로
기득권 카르텔 이해관계와 정당화 이데올로기
승리 위한 전략 전술적 과제들과 실천적 고민
모든 시민 존엄 지키는 최소한의 생존 방어선
진보개혁 세력의 폭넓은 반차별 전선 구축으로
더 이상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의 정치를 향해

윤석열의 12.3 쿠데타 시도와 그에 따른 탄핵 및 구속, 그리고 이어진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한국 사회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암흑 같았던 겨울이 가고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을 세워야 할 시점에, 최근 진보당 손솔 의원이 주도하여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법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인권과 평등의 토대를 다시 단단하게 재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우리는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서 혐오가 어떻게 국가 통치의 핵심 기제로 작동했는지 목격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선언 아래 여성가족부 폐지가 추진되었고, 장애인과 이주민, 무슬림 등 소수자들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어 공격받았다. 기존에 존재하던 학생인권조례나 지역인권조례들이 곳곳에서 사라지거나 개악될 위기에 처했다.
집권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외국인(중국인) 혐오 선동을 했고, 보수 진영을 대표해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후보는 "반동성애"를 주장하며 지지를 모았다. 보수 언론들은 '불법 체류자와 외국인 범죄가 증가했다'며 불안감을 유포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러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가장 반대하는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비록 윤석열 정권과 쿠데타 주모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퍼뜨린 혐오의 씨앗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한때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거나 지지한다던 정치인들(김한길, 이상민, 금태섭, 류호정 등)이 국민의힘이나 그 아류 정당으로 흡수됐던 것도 뼈아픈 기억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정치적 스펙으로 이용하고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런 기회주의 정치인들은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더욱 강화하기만 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혐오의 유산'을 청산해야 할 역사적 책무를 지닌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무리하게 밀어붙일 사항은 아니다"라는 발언은 인권과 평등을 염원하는 이들에게 우려를 안겨준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희망고문'의 시즌2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중대한 개혁을 뒤로 미루는 전형적인 논리가 새로운 정부에서도 반복된다면, 쿠데타를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적지 않은 시민들의 기대와 열망은 다시 사그라들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애써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약속하고 정부 입법을 추진했던 것을 그 출발점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득권 우파와 보수 종교계, 경제 단체들의 반발 속에서 좌절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연장선에서 2013년에 당시 민주당이던 김한길 의원이 스스로 발의를 철회한 것을 보통 단절의 기점으로 이야기한다.

당시 통합진보당을 향했던 '종북 혐오'는 오늘날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을 향한 혐오와 그 궤를 같이한다. 기득권 우파 세력은 타자와 소수자를 '적'으로 규정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혐오의 기술은 종북몰이의 핵심 무기인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적 장치와 결합하여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여왔다.
따라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함께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이겨내기 위한 역사적 과제에서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의 감옥을 허무는 길과 구분되기 어렵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두 법안의 제정과 폐지를 연결하려는 문제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로막는 세력의 정점에도 극우 개신교와 기득권 보수 정치 세력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특히 핵심에 있는 극우 개신교 세력은 2년 전에 대규모 집회까지 열며 반대에 앞장섰다.
당시에 구약 전문가 김근주 교수는 극우 개신교의 이런 행태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성소수자들을 마음껏 비난하지 못할까 봐' 주일 예배까지 빼먹으면서 200만 명을 모은다? 정말 끔찍하다 싶어요. 미친 짓, 미친 짓의 한자어인 '광란', 거기에 접두사를 하나 더 붙여서 '대광란' 말고는 도대체 이걸 무슨 말로 수식할 수 있나 싶어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에 있다. 극우 개신교 쪽의 목소리 큰 사람들을 따라가 보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람들과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강남의 대형 교회들은 단순한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파워 엘리트들의 허브이며 사교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차별금지법은 교육, 고용, 재화 공급의 현장에서 학력, 성별, 종교, 인종에 따른 차별적 이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위협적 장치다. 즉, 차별과 혐오를 통해 돈벌이를 하고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에게 이 법은 눈엣가시이다. 반공주의와 연결해 복음과 구원을 강조하며 성장해 온 한국 개신교의 위기도 그 배경에 있다.

이것이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80%가 찬성하는데도 보수적인 기득권 카르텔 세력이 차별금지법에 한사코 반대하며 그것의 제정을 막아서는 이유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눈치 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기득권 보수 카르텔의 목소리가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발의를 넘어서, 제정을 위한 지혜롭고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고민해야 한다. 벌써 8번 넘게 발의했다 실패한 차별금지법은 더 이상 발의로는 만족할 수 없다. '우리는 어쨌든 발의했다'라고 자족하려는 게 아니라면 단순한 도덕적 당위의 선언이나 강조를 넘어서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과 전술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적극 반대하는 기득권 우파 정당들이 상대적 소수이거나 분열해 있는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개혁 정당들이 과반을 훌쩍 넘어선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달라진 상황과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둘째, 프레임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은 이 법을 '소수자에게 특혜를 주는 법' 혹은 '다수를 역차별하는 법'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려 한다. 우리는 이를 돌파하여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라는 점을 여론의 상식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을 때 여성, 노동자, 청년, 대다수 시민의 삶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아지는지, 그리고 이 법이 결국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보수적 족벌 언론들의 무관심과 적대감을 뚫고 SNS와 유튜브 등 대안 미디어들까지 최대한 활용하며 '혐오 뉴스'를 '평등 담론'으로 압도해야 한다.

넷째, 진보 정당들이 그 중심에 있는 차별금지법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강화하며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서 원내외에서 힘을 모아야 한다.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진보개혁 정치 세력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던 정의당과 지금 22대 국회에서 그것을 이어받고 있는 진보당의 협력도 중요하다.
두 진보정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 속에서 어떤 걸림돌에 부닥쳤고, 우리 편에서는 어떤 시행착오와 부족함이 있었는지 서로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이후 이어진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으로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뼈아픈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섯째,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계속 국민의힘과 혐오 세력의 눈치를 보고 타협하려 하는 민주당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한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지지와 동참이 없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단지 민주당을 비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현명하고 효과적인 전술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똑같다고 한다면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가 아닐 뿐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세력을 늘리는 것에서도 효과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 민주당 내부를 봐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찬성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노골적 반대자에게는 단호한 비판을 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하려는 의원들에게는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특히 '당원 중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의 특성에 주목하며, 500만 민주당 당원과 더 많은 지지자들의 압력으로 차별금지법을 민주당의 핵심 과제로 만들도록 아래로부터의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은 차별금지법에 우호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가 있고, 조원철 법제처장은 혐오 발언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데 이런 것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왔던 국가인권위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빨리 몰아내야 한다.

일곱째, 과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제정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 힘이 됐는지 경험과 교훈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나 정확한 정세 판단과 기회의 포착, 강력한 프레임의 전환, 우호적인 여론의 조성, 민주 진보 개혁 진영의 폭넓은 연대,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거대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중요했다.
'사회적 합의'와 '나중에'를 말하며 기다리는 사이에, 차별과 혐오의 칼날에 상처 입은 소중한 이들이 너무 많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 문제는 사회적 합의의 부재가 아니라 '혐오할 자유'를 외치는 세력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닭장 속의 여우에게 활개 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닭에게는 죽음의 공포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혐오의 공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에 발의된 손솔 의원의 법안을 중심으로, 모든 힘을 집중하여 연대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혐오 세력을 타격하고, 동요하는 세력을 압박하며, 지지 세력을 총결집하는 지혜로운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 여성, 환경, 이주민, 장애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사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강력한 '반차별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검찰개혁이나 사법개혁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으로 대립시킬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이 혐오 정치를 끝내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이 길의 끝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희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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