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뚜벅뚜벅 걷다보면…이곳에 머물게 된다
산·바다·들 품은 ‘영덕 블루로드’
문화자원으로 청년들 정착 도와
낯선 장소·사람 잇는 연결고리
함께 마음 나누며 창업 지원도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는 산·바다·들을 모두 볼 수 있는 트레킹 명소가 있다. 고래가 살던 푸른 바다 옆을 걷는가 하면, 소나무가 곧게 솟은 오솔길이 등장하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나타났다가 돌담 너머 보이는 기와지붕의 처마가 버선 끝처럼 뾰족한 괴시리 전통마을도 마주친다. 때로는 흙과 모래를 밟고 바위와 풀 사이를 헤쳐가는 이 길은 ‘영덕 블루로드’다. 이곳에서 ‘걷기 프로그램’ 하나로 인구소멸이 심각한 지방에 청년을 머물게 할 가능성을 찾은 사람이 있다. 바로 설동원 메이드인피플 대표(34)다.
“걷는 속도가 여행을 즐기기에 가장 좋아요. 평소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거든요. 나와 세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국토를 종주하며 트레킹의 힘을 체감한 설 대표는 2021년부터 영덕에서 ‘뚜벅이마을’이라고 이름 붙인 청년마을을 운영해왔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함께 지내며 지역에서 정착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처음부터 뚜벅이마을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교류·농촌 체험 기획이 먼저였다. 이후 곳곳에 소문이 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업 제안이 이어졌다. 그중에서 영덕 블루로드라는 문화 자원을 활용해 청년마을을 조성하는 것이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마라톤 일정을 포함해 최대 10주간 머무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1만5000명에 이른다. 평균 경쟁률은 5대 1을 넘는다. 그렇다면 ‘걷기’는 어떻게 새로운 곳에서 살아볼 마음으로 이어졌을까.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이랍니다. 함께 걷다보면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되고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죠. 그 시간이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여기서 조금 더 있어 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테고요.”
뚜벅이마을에 오는 청년 가운데 도시에서 한번쯤 좌절을 겪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설 대표는 영덕에 와서 ‘살 이유가 생겼다’고 말한 참가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6주간 살아보기’를 시작하기 전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더 살고 싶은 이유를 찾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프로그램을 마친 후 “존재의 가치를 알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시험이나 취업 준비의 압박, 퇴사와 이별로 지친 이들에게 이곳은 도시에서 받은 상처가 아무는 치유의 장이다. 여행지에선 사회와 가정에서 맡아왔던 역할이 옅어지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설 대표는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결국은 낯선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트레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함께 걷고 공감을 형성하는 경험은 장기 체류로 이어진다. 현재 15명이 영덕에 정착했다. 이들 모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청년이었다. 설 대표는 “우리가 먼저 이 지역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자고 생각했다”며 “귀농·귀촌을 고민할 때 결국 떠올리는 건 나와 연결된 사람이나 공간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걷는 행위로 맺어진 관계가 영덕을 다시 찾고 머물 이유가 되는 셈이다.
영덕에 남은 청년 상당수는 창업을 택했다. 2021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청년은 전통주사업을 시도한 뒤, 현재는 영덕에 작은 바를 열었다. 그는 설 대표와 인연을 이어가며 전통주와 칵테일 수업을 함께 진행한다.
뚜렷한 계획 없이 정착한 청년도 있다. 그는 마을에서 연인을 만나 샤인머스캣과 멜론 농사를 짓고, 지금은 결혼을 앞뒀다. 또 다른 이는 영덕문화관광재단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 자리를 잡았고, 현재는 영덕에 정착해 가정을 꾸렸다.

설 대표가 그리는 다음 목표는 ‘로컬의 글로벌화’다.
“서울을 주로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을 지방 소도시로 향하게 하고 싶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찾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지역의 매력을 더 널리 알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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