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없는 구속' 출국금지,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국의 창(窓)]

2026. 1.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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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1일, 서울고등법원은 수사기관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수사를 기약 없이 끌면서 미국 영주권자의 출국을 장기간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수사를 받는 기업인이나 개인은 제한 없는 출국금지로 글로벌 영업 활동과 출입국 자유를 사실상 박탈당한 채 수년간 수사기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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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되는 출국금지, 심각한 폐해 우려
법 취지 되새겨 모호 규정도 정비해야
출국금지, 꼼꼼한 사법 통제장치 필요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도심공항출장소 모습. 한국도심공항 홈페이지

2025년 10월 31일, 서울고등법원은 수사기관이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수사를 기약 없이 끌면서 미국 영주권자의 출국을 장기간 제한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출국금지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 개시 후 1년 4개월 동안 참고인 조사를 두 차례만 실시하는 등 수사가 현저히 지연된 점을 지적했다.

수사기관의 출국금지 조치는 ‘영장 없는 구속’에 가깝다. 형식적으로는 수사기관이 요청하고, 그 권한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사기관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다. 법무부가 실질적 심사 없이 수사기관 요청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언론 역시 ‘검찰, ○○ 피의자 출국금지’라고 보도하지, ‘법무부, ○○ 사건 출국금지’라고 쓰지 않는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수사 목적의 출국금지 요청은 2024년 9,018건에 달했다. 2020년보다 2,000건 이상 증가한 수치다. 수사권 조정 실패로 수사는 갈수록 장기화되었지만, 출국금지는 더 쉽게, 더 자주 활용되고 있다. 수사를 받는 기업인이나 개인은 제한 없는 출국금지로 글로벌 영업 활동과 출입국 자유를 사실상 박탈당한 채 수년간 수사기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은 출국금지 기간을 원칙적으로 ‘1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특별 사정이 없는 한 단기간으로 제한하고, 연장이 필요하다면 신중히 판단하라는 것이 입법 취지다. 그러나 법무부와 수사기관은 사업과 개인의 활동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된 시대에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를 반복하며 그 폐해를 외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참고인이나 내사 단계 인물까지 광범위하게 출국금지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수년이 흐른 뒤 불송치되거나 무혐의로 종결되더라도, 수사기관이나 법무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출국금지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사의 밀행성을 이유로 사전 통보를 생략하는 비율은 2024년 기준 검찰 51.2%, 경찰 32.7%에 이른다. 당사자는 공항에 나가서야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발이 묶인다.

이의신청이라는 구제 절차가 있지 않느냐고? 억울한 당사자일수록 이의신청 자체가 수사기관에 부정적 인상을 줄까 주저하게 된다. 용기를 내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2023년 기준 인용률은 0.3%에 불과하다. 수사기관이 ‘수사 중’이라는 사유를 들면 법원도 달리 판단할 여지가 없는 구조다.

이 같은 관행이 유지되는 근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출국금지 대상과 사유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수사기관의 해석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출국금지는 실질적으로 체포·구속에 준하는 자유 제한인 만큼, 보다 강력한 사법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체적인 조사 일정이나 소환 계획도 없이 막연히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를 연장하는 관행은 이제 통제되어야 한다. 법무부는 출국금지에 대한 실질적 심사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수사기관도 변화해야 한다. 수사는 하지 않은 채 출국금지만 남발하는 것은 수사력의 부재를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오프닝 장면처럼, 공항이 ‘예고 없는 처벌의 현장’이 아닌 ‘상봉’의 설렘과 행복이 깃든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시각물_김후곤(김후곤 제공)

김후곤 변호사·전 서울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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