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칼럼] 자기 돌봄

지난 주말 부친과 몇몇 지인과 학교 옆에 자리한 한국섭리수녀회가 운영하는 영성센터에서 1박 2일의 피정의 시간을 가졌다. 비록 짧지만 모처럼 만의 쉼의 시간을 가지며 영적, 육적으로 충전할 수 있었다. 참고로 천주교에서 행하는 '피정(避靜)'이란 일상을 떠나 한적한 곳(성지나 피정 센터 등)에 머무는 가운데 기도와 성찰 등을 통해 영혼과 육신의 숨과 함께 활력을 되찾는 '자기 돌봄'의 시간이다.
피정의 주제를 '약함과 돌봄'으로 정했는데, 그동안 많은 일들로 인해, 특히 우리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지치고 상처 입었던 우리 영혼을 돌보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였다. 강의, 묵상, 산책, 기도, 미사 등으로 프로그램을 짰는데, 가장 유익했던 시간은 '나눔'의 시간이었다. 참가자 대부분 '돌봄' 특히 '자기 돌봄'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다. 또한 자기를 돌보는 것이 그리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그 자리에 참석하신 수녀님들이 크게 공감하였는데, 수도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늘 타인을 돌보는 일을 해야 했기에 자신이 상처 입고 돌봄을 필요로 함을 잊고, 그만큼 자기를 돌보는 일에는 더욱 소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부모 입장에서도 집안일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를 돌보는 일 때문에 정작 자기 영혼은 돌보지 못해 지치고 힘겹게 생활해 왔음을 이구동성으로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지금 각자가 사는 삶이 때로는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공감(consensus)에 이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보다 먼저 삶을 사신 부모님의 삶을 떠올렸다. 부모님께서 그렇게 사신 것처럼, 각자의 역할 안에서 약함으로 인해 상처 입고 사는 서로를 돌보며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하고 피정을 마무리하였다.
여러 사람의 나눔을 경청하다 문득 필자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기에 그만큼 집안일에 소홀하셨다고 느낀 것일까. 필자는 집에 늦게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동생과 함께 기다리느라 저녁 늦게까지 잠을 안 잔 적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마 필자가 10살 정도였을 때, 방에서 빨래를 개는 모친에게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났다. "엄마, 나 이다음에 크면 책을 한 권 쓸 거야. 책 제목은 '무관심 속에 자란 아이들'" 돌이켜보면 이 철없는 말이 엄마 가슴에 얼마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혔을까 하는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리고 피정의 나눔을 통해 더 강하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각자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기르고 돌보셨음을,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부모님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자녀 입장에서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부모님의 가장 아름다운 돌봄의 실천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된다.
피정을 통해 각자는 이러한 자기 돌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여행이든, 피정이든, 순례든,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약한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상처로 괴롭고 외로웠을 나의 영혼을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다. 또한 수고해온 서로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사람의 현존과 격려의 말 한 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그래요,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 마음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이 정도면 잘 살아온 것 아닌가요. 그러니 함께 힘을 냅시다." 우린 이런 말들로 새롭게 힘을 얻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말이다. 별 가치도 없는 것 같지만, 돈도 품도 들지 않는 것 같지만, 말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반대로 영혼을 치유하고 보듬어 안으며 살아갈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위로와 지지, 돌봄이 되는 말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새해 첫 달의 끝 무렵이 되면 좋겠다.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로 각자가 살아온 삶 그대로를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으로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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