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 굴려본 이 남자 "돌반지 팔아 주식사라"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6. 1. 27. 17:3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의 초가속' 저자 … 황정호 前삼성생명 CIO
경영대 제자들도 묻지마 투자
軍월급 날리는 것 안타까워
美선 초교부터 재테크 교육
저축·지출·투자·기부 4가지
테마 ETF는 종목만큼 위험
70%는 S&P, 30%만 모험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복리'를 세계 8대 불가사의이자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했고, 워런 버핏은 '복리의 마법을 믿고 기다리라'고 했다. 특히 장기보유 가치투자의 대가였던 버핏이 부의 상당 부분을 60대 넘어 이룬 것도 복리가 만들어낸 '부의 초가속' 효과 덕분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자산 시장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한 활황 속에서도 지수 상승·하락에 몇 배의 수익을 거는 이른바 '곱버스' 등에 수천억 원이 몰리고, 단타 매매가 기승이다. 삼성생명의 200조원 자산을 총괄했던 최고투자책임자(CIO) 출신 황정호 제이스프링스 대표(숭실대 겸임교수·63)는 "코스피의 내실은 5000 달성 그 후가 더 중요하다"며 "단기 투자 수요만으로는 견고한 우상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삼성생명 펀드 운용역으로 경력을 쌓아 삼성그룹 재무팀, 삼성생명 CIO까지 오른 그는 퇴직 후 대학 강단에 서면서 유난히 눈이 벌게진 학생들을 자주 마주하게 됐다. 밤에는 코인 거래를, 낮에는 주식 단타 거래로 한숨도 못 자고 강의실에 들어온 이들이다. 그가 신간 '부의 초가속'(클라우드나인 펴냄)을 통해 복리·분산·절제라는 투자의 3원칙을 제시한 계기가 된 장면이기도 하다. "경영·경제 전공인데도 금융 교육을 받아본 적 없으니 무작정 투자하는 학생이 태반이에요. 특히 군 복무 중 2000만원 이상 월급을 모아 놓고 섣부른 고위험 투자로 돈을 잃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죠. 이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깝습니다."

그는 한국 개미들의 단기 매매 성향이 개인의 투기심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십수 년간 박스 안에 갇혔던 코스피의 역사, 경기 흐름에 민감한 우량주 중심의 산업 구조가 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인터넷, 게임에 익숙한 젊은 층은 손쉽게 '한방'을 노리라는 유혹에 빠져든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자산의 70%는 미국 S&P500, 나스닥100 같은 핵심 지수에 투자하고, 나머지 30% 내에서만 투자 경험을 쌓는 '7대3' 패시브 투자 법칙이다. 특히 국내 운용사들이 내놓은 S&P500 ETF에 연금계좌를 통해 자동 적립식 투자를 하면, 주가가 내릴 때 오히려 평균단가를 낮춰 복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반면 최근 유행하는 특정 섹터 ETF에 대해선 "사실상 개별 종목 투자와 다를 바 없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1991년생인 제 큰딸 돌잔치 때 금반지 대신 S&P500 지수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이 2배 이상 높았을 거예요. 금은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지만, 기업은 성장하죠. S&P500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500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고, 기축통화 달러의 힘에 올라타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에서 꿈의 고지처럼 여겨온 '코스피 5000'에 대해선 "과열된 투자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시기 '동학개미운동'으로 주가가 폭등·폭락했던 것처럼 한국 시장의 불안정성이 다시 한번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황 대표는 "'자본 시장을 통해 건전한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는 국민 정서를 키워야 한다"고도 거듭 강조했다. '주식=투기'라고 손쉽게 생각하는 국민 정서가 금융교육 문턱을 높였다는 점도 꼬집었다. 예컨대 미국 시카고의 한 초등학교에서 저금통을 저축·지출·투자·기부 등 4개로 나눠 돈을 '모으는 것'보다 '활용하는 것'으로 가르치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접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1996년 아직 국내에 '운용'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에 삼성생명 최초의 해외펀드 매니저로 런던 땅을 밟았다. 이후 38세에 주식운용팀장으로 파격 발탁되는 등 재무 업무에서 글로벌과 협업한 바 있다. 황 대표는 "작은 실천을 쌓아 큰 결과를 내고, 위험을 줄이며 욕심을 다스리는 것이 돈을 내 삶의 도구로 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