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법원 "북, '지상낙원'에 속은 4명에 8억원 배상하라"
북한에 받아낼 방법 없어 상징적 의미 그쳐
2003년 탈북 가와사키의 삶은 역경의 연속
NGO '함께 모이세' 결성해 "북송사업 허구"

일본 도쿄지방법원 재판부가 수십 년 전 체제 선전에 속아 북송됐다가 나중에 북한을 탈출한 4명에게 북한 당국이 8800만 엔(약 8억 2480만 원)을 배상하라고 전날 판결했다고 영국 BBC가 27일 전했다. 원고들은 북한이 '지상 낙원'이라고 선전했으나 도착해서 맞닥뜨린 것은 강제 노동과 비참한 생활 여건, 그리고 침묵이었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가미노 타이이치 재판장은 "원고들의 삶 대부분이 북한에 의해 망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원고는 사이토 히로코, 이시카와(승계인), 가와사키 에이코, 사카키바라 등 북송 후 탈북한 재일교포 4명이다.
이번 판결은 상징적인 의미가 커 실질적으로 집행할 방법은 없다. 북한은 몇 년이나 소송을 무시해 왔고, 김정은 지도자는 법원의 소환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법원에서 몇 년이나 이어진 법적 다툼 끝에 내려진 이번 판결은 원고 측 변호사들로부터 '역사적'이란 칭송을 들었다. AFP 통신은 "일본 법원이 북한의 부정 행위를 인정하기 위해 주권을 행사한 첫 사례"라고 보도했다. 원고 측 변호사 후쿠다 켄지는 이번 판결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으로부터 실제 돈을 받아내는 일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부터 1984년 사이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 조선인 9만여 명은 무료 의료·교육·일자리의 이상적인 삶을 약속하는 재정착 계획을 철석같이 믿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들은 농장과 공장에서 일해야 했고, 제한을 받으며 떠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원고 중 한 명인 가와사키 에이코(83)는 열일곱 살이던 1960년 북한으로 갔다. 그녀는 2003년에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2018년에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섯 원고 중 한 명이었다. 원래 원고 중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중 한 명은 가족(승계인)이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경남 창원 출신 부친과 전남 목포 태생 모친 사이에 태어난 재일교포 가와사키 에이코는 2022년 9월 BBC 뉴스 코리아, 이듬해 7월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24년 11월 KBS 다큐 인사이트를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재일교포 북송 사업으로 북한에 1960년 끌려가 43년가량 체류하다가 2004년 중국을 통해 탈북했다. 그녀의 저서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2021년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는데 고교에 진학할 집안 형편이 안돼 고민하다 학비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조총련계 고교에 입학했다. 그 뒤 북송을 권유받았다. 배가 북녘 항구에 들어섰을 때 환영 인파 속에서 먼저 입북한 학교 선배가 일본어로 "그 배에서 내리지마!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배 안에 숨어 있었더라도 샅샅이 뒤져 찾아냈을 일이었다.
원래 에이코가 먼저 입북하고, 1년 뒤에 가족 모두가 북송선에 오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녘의 현실을 잘 알게 된 그녀가 편지를 보내 가족을 일본에 남아 있게 할 수 있었다.
지방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같은 대학 선배로 원래 그녀를 감시할 임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중매를 통해 결혼했다. 남편의 시외삼촌이 김일성 측근인 서철이었다. 북한에서 재일교포는 제일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출세를 포기해야 했다.
다섯 자녀를 뒀으나 남편이 급성 간염으로 12년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병원에서조차 시한부 판정을 내릴 정도였다. 간염 전문 병원이 집에서 걸어 2시간 반 걸리는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는데, 남편을 살리는 방법이 혈장 치료 밖에 없어 수혈소와 병원을 이틀에 한 번씩 12년을 오갔다고 했다. 마시는 물도 집에서 가져오고, 밥도 직접 해서 먹일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완치된 남편은 결국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다.
1986년 27년 만에 부모를 북한에서 만났다. 1970년~80년대 북한은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한 '상봉 비즈니스'를 벌여 거액의 현금을 내면 가족 상봉을 허락했다. 2주 체류 중 가정 방문은 2박 3일 밖에 주어지지 않았는데 부친이 "어떻게 자살하지 않고 버텼느냐"며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부모는 돈을 더 내고 에이코와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 사망 후 부모가 보내준 옷과 신발, 악세서리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다섯 남매를 혼인시킨 뒤 홀몸이 되자 2003년에 탈북을 결심했다. 탈북 브로커를 만나기 위해 양강도 혜산으로 이동,일본에서 보내온 명품과 악세서리를 두르고 장마당을 돌아다니니 브로커가 따라붙었다. 젊은 여성 브로커와 함께 대낮에 탈북했다. 두만강 상류여서 폭이 좁고 물살이 세지 않아 탈북하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2004년 8월 18일 도쿄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2008년에 막내 딸이 뒤이어 탈북했다. 2014년 2월 7일 UN 북한인권보고서를 접한 뒤 그 해 11월 14일 NGO 단체 '모두 모이자'를 결성했다. 북송사업의 부당성과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리고, 구제를 위한 협력을 호소, 요청하는 활동을 했는데 날씨와 상관 없이 조총련 도쿄 본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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