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힐링속으로-경북을 걷다] 100. 포항의 세 가지 길 대자연과 역사‧문화, 시민 삶을 잇다
‘경북을 걷다’ 100회,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포항의 과거와 미래

포항은 '거대한 길의 서사'를 품은 도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물론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도시가 교차하는 길 위에는 도전의 역사와 혁신의 울림이 공존한다.
선사시대부터 유구한 역사와 해양문화의 중심지였던 포항은 철강 산업의 뜨거운 쇳물로 대한민국 근대화‧산업화의 길을 열었다. 이제 이차전지와 AI 등 첨단 신산업을 통해 미래 먹거리의 기반을 다지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또한 포항은 회색 공업도시라는 딱딱한 외피를 벗고, 모두의 발길을 이끄는 녹색 생태도시이자 '감성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길동무 삼아 낭만적인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선사한다.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촌의 고즈넉한 길은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건네는 깊은 사색을 경험케 한다. 여기에 최근 복원된 학산천 물길까지 더해지며, 도시는 회복과 재생이라는 생명의 축을 새로이 갖추게 됐다
본지 연재 기획'걸어서 힐링 속으로-경북을 걷다'는 100회를 맞아 자연과 역사, 시민의 삶이 공존하는 포항의 세 가지 길을 따라가 보았다.

△마고할미의 손길, 대자연이 빚고 파도가 깎은 절경,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억겁의 세월 동안 마고할미의 손길과 파도가 켜켜이 빚어낸 호미반도의 해안단구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장관을 이룬다.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랑이 꼬리의 에너지가 응축된 지역이자 동해안에서 가장 큰 만곡인 영일만을 품고 있는 호미반도가 간직한 비경이다.
포항시가 호미반도를 따라 조성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자연과 시간이 함께 빚어낸 동해안을 대표하는 해안 트레킹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어느 코스를 걷든 깎아내리는 절벽과 부딪히는 파도가 있는 '포항 12경'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둘레길을 따라 펼쳐진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리드미컬하게 걷다보면 힐링이 저절로 되고, 오직 위대한 자연과 나 자신만이 남는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과 구룡포 등을 거쳐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를 조망하는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둘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파도가 깎고 바람이 다듬은 선바위, 독수리 바위, 힌디기 동굴 등 자연이 만든 기암괴석 걸작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완만한 코스가 많아 걷기에 부담이 없고, 수줍게 머리를 내민 수국 등 아름다운 사진 촬영 명소, 그리고 숨은 스토리가 곳곳에 자리해 재미를 더한다.

호미반도 일대를 포함한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은 해양 생태‧지질 자원의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난해 지정됐다. 아울러 호미반도는 국내 최초 국가해양생태공원 공식적인 지정을 앞두고 있다. 길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다채로운 지질 자연 경관과 해양 생태계를 만날 수 있어 관광·학술·교육적 가치를 고루 갖춘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청정 바다와 해안 생태계가 잘 보존돼 사계절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고 활력을 얻기에 충분하다. 해안둘레길은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 있어 짧은 산책부터 장거리 트레킹까지 다양한 코스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포항시는 걷기 좋은 가을 계절에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걷기 인증 이벤트'를 매년 개최해 시민과 관광객에게 힐링과 여유를 선사하고, 해안둘레길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편,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는 '사진으로 만나는 경북 여행' 시리즈의 12월 추천 장소로 포항 호미곶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선정했다.

△ 회색 도로가 걷히자 다시 드러난 푸른 희망, 도심하천 학산천 복원
답답한 콘크리트로 덮여 있던 도심 복개 하천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개통한 학산천은 시민을 위해 포항 도심에 생명의 혈관을 잇는 수변공간을 만들어 철길숲의 숲길과 물길을 잇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우현 도시숲~중앙동행정복지센터~동빈내항으로 이어지는 900m 구간의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되살렸다. 수(水) 생태계 건강성 회복과 친수 공간 조성을 통해 친환경 도시환경을 만들고, 구도심 도시재생의 핵심 기반이 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산업화 시대, 오직 경제 성장과 도시의 속도만을 위한 복개도로가 다시 걷히고 시민을 중심에 둔 생태 하천으로 재탄생했다. 악취나는 퇴적토 등 오염이 심했던 예전 학산천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물고기가 헤엄치고 왜가리가 찾아오는 지금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이자 반가운 소식이다.
시민들은 집 근처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건강하고 쾌적한 산책을 즐기고, 아이들은 물장난까지 칠 수 있게 됐다. 학산천 복원으로 도심 녹지축이 철길숲, 형산강 등과 이어져 큰 원을 이루며 하나로 연결된다. 하천은 열섬을 완화해 더위를 식혀주고,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 통로 역할을 하며 포항을 더욱 살기 좋은 '그린 시티'로 변모시키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조만간 개통되는 해오름대교와 연계해 도심의 새로운 볼거리이자 러닝코스로 큰 사랑을 받을 전망이다.

도심 물길은 문화와도 이어지고 있다. 하천이 동빈내항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 옛 수협 냉동창고 또한 '동빈문화창고1969'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냉동창고는 소중한 산업 유산이자 동해안 어업의 전진 기지로, 어민들의 피땀 어린 삶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이번에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융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오는 2월 말까지 구룡포 아라 예술촌 입주작가들의 성과보고 작품전 '작년을 기다리며'가 열리고 있다.

△ 시간을 거니는 산책...과거를 걷고 미래를 배우다, 장기읍성과 유배문화체험촌
포항의 남쪽 끝, 장기면으로 눈을 돌리면 묵직한 시간이 흐르는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선조들의 절개와 고난의 역사가 서린 '역사 문화의 길'이다.
동해안의 방어 거점이자 행정의 중심지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장기읍성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성벽이 주는 웅장함과 그 아래로 계절별로 색다른 마을 풍경이 마치 그림같이 펼쳐진다.

포항은 장기읍성을 행정안전부의 '고향올래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역사문화 자산과 체류형 정주 기반을 융합한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로 준비하고 있다. 총 20억 원을 투입해 읍성 내 유휴부지에 거주 및 공동 커뮤니티 공간 조성,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중·장기형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은 당대 최고 석학인 다산 정약용, 우암 송시열 선생 등이 유배 생활을 하며 학문과 예술을 꽃피웠던 것을 기념해 명소화 한 곳이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시문과 저서를 쓰고 지역 선비들을 교육하며 독특한 유배문화를 탄생시켰다. 가시울타리에 갇혔지만(圍籬安置), 그 사이로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꿨던 고뇌와 철학을 길 위에서 되새겨볼 수 있어, 가족 단위로 교훈과 학습 효과를 겸한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포항의 길은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파도가 치는 해안길에서, 물길이 흐르는 도심 하천으로, 그리고 시간이 쌓인 성곽길 등으로 이어진다. 역경과 도전을 넘어 기회와 가능성을 창조하는 곳이 바로 포항이다.
중국의 루쉰은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라고 백창우 시인은 읊었다. 이번 주말, 포항의 길을 따라 당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힘찬 발걸음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