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금연 결심, 전자담배로 ‘환승’하시나요?
전자담배 흰 연기, 수증기 아닌 독성 에어로졸
연초·전자담배 섞어 피우는 ‘이중 사용’이 더 위험
호흡기질환 발생 위험 3.3배 증가
니코틴 의존도 7점 이상이면 상담 필요

세종시 공무원 박모(45)씨는 2026년 새해 목표를 ‘금연’으로 정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이어지는 술자리와 업무 스트레스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구입했다. “냄새도 안 나고, 하얀 연기도 단순한 수증기니 몸에 덜 해롭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는 상황에 따라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를 골라 피우는 ‘이중 흡연자’가 됐다. 박씨는 “오히려 예전보다 마른기침이 잦아지고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새해가 밝으면서 금연을 결심하는 흡연자가 많다. 하지만 금단현상의 괴로움 앞에 의지는 꺾이기 일쑤다. 이때 흡연자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전자담배다.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덜 해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전자담배 연기, 해로운 에어로졸
26일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자담배 사용자는 이미 1억 명을 넘어섰다. 시장 규모 역시 2014년 1,560만 달러에서 2024년 388억5,320만 달러로 10년 만에 약 2,500배 급성장했다. 일부에선 전자담배를 흡연의 ‘안전한 대안’이라 홍보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자담배는 궐련형(담뱃잎 스틱 가열)과 액상형(니코틴 액상 가열)으로 나뉜다. 두 방식 모두 피울 때 하얀 기체가 나오는데, 가장 큰 오해가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 단순한 ‘수증기’로 여기는 것이다. 연초보다 냄새와 자극이 적어 인체에 무해할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이 기체는 니코틴과 중금속, 각종 발암물질이 뒤섞인 ‘에어로졸’이다. 액상을 가열할 때 나오는 미세 금속 입자는 폐 세포 깊숙이 침투해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조유선 교수는 “유해 성분 수치가 일부 낮다는 점을 들어 ‘덜 해롭다’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자담배는 형태만 달라진 또 하나의 담배일 뿐, 결코 안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자담배가 심혈관과 호흡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구체적인 수치로도 증명된다. 최근 발표된 메타분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심혈관질환, 뇌졸중, 대사기능 장애 위험도는 일반 담배 사용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자담배 사용자는 비사용자보다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1.53배 높았으며, 과거 흡연력이 있는 경우 그 위험은 2.52배까지 치솟았다. 뇌졸중 위험 역시 1.73배 상승했다. 니코틴이 혈압과 심박수를 높여 심장에 직접적인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에어로졸 속 미세 입자가 혈관 내피세포 기능을 떨어뜨려 염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폐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전자담배 사용자의 ‘1초간 강제호기량’은 비사용자에 비해 약 14%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제호기량은 최대한 숨을 들이쉰 후 첫 1초 동안 내쉴 수 있는 공기의 양을 뜻하는 폐 기능 지표다.
이중 사용 시 몸에 더 치명적
더 심각한 문제는 박씨처럼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활용하려다 결국 두 가지를 모두 피우는 ‘이중 사용자’가 되는 경우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0% 이상, 액상형 사용자 중 40~70%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집 근처에선 냄새가 덜 나는 전자담배를, 밖에선 일반 담배를 피우는데 이는 독성물질 노출을 가중시키는 최악의 습관이다.
2019년 미국예방의학저널에 실린 연구 결과는 이러한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비흡연자 대비 전자담배만 사용할 경우 호흡기질환 발생 위험도는 1.29배 높았다. 일반 담배를 태울 경우엔 그 위험이 2.56배 커졌다. 그러나 두 가지를 같이 피우는 이중 사용자는 호흡기 질환 발생 위험이 3.3배까지 치솟았다.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의 해로움이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오히려 가중된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어떤 담배가 덜 해로운가’를 고민할 게 아니라, 모든 형태의 니코틴으로부터 벗어나는 ‘완전한 금연’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연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상 후 첫 담배까지의 시간 △금연구역에서의 참기 어려움 △하루 흡연량 △와병 중 흡연 여부 등의 설문을 통해 니코틴 의존도를 측정해볼 수 있다(첨부 표 참조). 점수가 4점 이하면 의지로 금연을 시도해볼 만하지만, 7점 이상이면 니코틴 중증 의존 상태이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이규배 교수는 “금연클리닉에서는 흡연 기간과 니코틴 의존도를 평가한 뒤, 금단·갈망 증상을 조절하는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한다”며 “혼자 참는 것보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 금연 성공률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금연을 시작하면 우리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한다. WHO에 따르면 금연 20분 후부터 혈압과 맥박이 안정되고, 하루가 지나면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가 줄어 심장 부담이 감소한다. 48시간 이내에 후각과 미각이 살아나고, 9개월 정도면 숨 가쁨과 기침이 줄어드는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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