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인터뷰]

최하나 기자 2026. 1. 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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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살면서 이렇게 인복이 타고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혼만 잘한 줄 알았더니, 이번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로 연출의 부족함을 채웠다. 좀 겸손할 법도 한데, 장항준 감독은 도리어 “결국 그 사람들을 모은 건 나 아니냐”며 능청스럽게 자기 공으로 돌렸다. 그 말이 얄밉지만, 한편으로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 힘이 바로 장항준 감독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2월 4일 개봉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항준 감독이 ‘왕과 사는 남자’의 메가폰을 잡은 건 ‘실패한 정의’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계유정난 이후 살육의 역사가 아닌, 그 뒤에 남겨진 단종의 삶과 최후에 집중했다. 장항준 감독은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도 되는가, 실패한 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고 싶었다”면서 “성공한 불의에 박수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그 가치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렇기에 각색의 방향도 명확했다.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는 단종의 유배 생활에 상상력을 더해 ‘팩션’의 묘미를 살렸다. 장항준 감독은 “역사의 빈틈이 창작자에게는 큰 자극이 된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복위 라인을 축으로 한명회(유지태)가 깊숙이 개입하고, 엄흥도와 접촉하는 설정을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단종 역시 단순히 나약한 왕이 아니라, 신하들이 목숨 걸고 지킬 가치가 있는 ‘성군의 자질’을 갖춘 인물로 그려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항준 감독이 인복 하나는 참 타고 났다고.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을 보며 내내 감탄하다가, 장항준 감독의 인복이 부럽다는 생각으로 귀결됐다. 이에 대해 묻자 장항준 감독은 웃으며 되물었다. “다들 인복이라고 하는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 그 사람들을 누가 모았나. 바로 나다.” 얄밉게 들릴 법도 하지만,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였다. 그는 “감독 10명에게 시나리오를 주면 캐스팅은 다 다를 것이다. 나는 인기를 배제하고 온전히 연기만 봤다”고 했다.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염두에 둔 ‘0순위’였다. 장항준 감독은 “무의식 중에 유해진을 그리며 썼다.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며 관객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배우는 유해진뿐”이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실제로 유해진은 촬영 내내 장항준 감독의 기대 이상을 해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단종 역의 박지훈을 캐스팅하는 과정은 ‘삼고초려’에 가까웠다. 장항준 감독은 박지훈을 아이돌이 아닌 ‘약한 영웅’의 배우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장항준 감독은 박지훈을 캐스팅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세 번째 만남까지도 확답을 안 주더라. 네 번째 만났을 때야 하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박지훈이 끝까지 거절했으면 다른 배우가 했겠지만, 이홍위(단종)라는 인물이 이 정도 깊이로 나오진 못했을 것”이라며 박지훈의 진중한 태도와 연기력을 높이 샀다.

조연 캐스팅 역시 ‘연기력’이 제1의 기준이었다. 매화 역의 전미도는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오로지 연기력 하나만 보고 섭외했다. 장항준 감독은 “그 나이대에 연기 잘하는 사람으로 단번에 전미도가 떠올랐다.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줬는데, 한다고 해서 놀랐다. 제작진도 전미도가 한다고 하니까 ‘왜요?’라고 하더라. 전미도가 한다고 해서 매화 분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장현성과 이준혁의 합류에는 장항준 감독의 안목과 인맥이 동시에 작용했다. 영화 초반 단종을 복위하려는 충신들이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임팩트를 위해 절친 장현성을 섭외했고, 정의롭지만 힘없는 금성대군 역에는 ‘잘생긴 양반’의 이미지가 필요해 이준혁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흔쾌히 촬영에 응했다. 물론 장현성은 단발성으로 끝날 줄 알았던 촬영이 계속 늘어나고, 심지어 얼굴 본까지 뜬다고 하자 “가만 두지 않겠다”며 장항준에게 애정 어린 협박(?)을 했단다.


이번 영화에는 장항준 감독이 고심해서 넣은 디테일이 있었다. 단종과 세상을 가르는 ‘강’과, 단종의 각성을 돕는 ‘호랑이’는 영화의 중요한 메타포다. 장항준 감독은 “강은 얕아 보이지만 건너기 힘든, 이승과 저승의 경계와도 같다. 결국 단종은 죽어서야 그 강을 건넜다”고 설명했다. 특히 호랑이 털을 구현하는 CG 작업에 공을 들였지만, 촉박했던 시간 탓에 만족할 만한 퀄리티가 나오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연출적으로 부족하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하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장항준 감독은 "인정한다. 내가 연출을 잘했으면 벌써 ‘1000만’ 했다”며 유쾌하게 받아쳤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보다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마저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장항준만의 화법이었다.

그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당연히 바랐다. 다만 그 바람 안에는 비단 ‘나만 잘 되면 된다’라는 이기심과 욕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항준 감독은 "흥행도 흥행이지만, 2026년 한국 영화가 다시 살아나는 데 우리 영화가 일조하면 좋을 것 같다"며 “같은 배급사 작품인 ‘만약에 우리’가 문을 잘 열었으니, ‘왕과 사는 남자’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잘 됐으면 하고, 또 우리 영화 뒤에 뒤이어 개봉하는 작품들도 이 바통을 이어받아 잘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인터뷰 내내 장항준 감독은 얄밉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비호감이기 십상인데, 왜 장항준은 그럴 수 없을까 궁금증이 도졌다. 이에 대해 물었더니 장항준 감독의 답은 명쾌했다. “저는 정치질을 싫어한다. 잘 나간다고 특별히 더 친절하지 않고, 못 나간다고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가 장항준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그의 영화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제공=쇼박스]

장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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