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 되나요?' 김선호라는 언어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사람마다 각자의 언어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배우 김선호에게도 김선호만의 언어가 있다. 장르와 배역이라는 외피를 넘어,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과 깊이로 대중의 마음에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 다정하고도 치열한 김선호만의 언어를, 앞으로도 기꺼이 통역하고 오래도록 탐독하고 싶은 이유다.
지난 1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극본 홍자매·연출 유영은)는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이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의 통역을 맡게 되면서 펼쳐지는 예측불가 로맨틱 코미디를 그린 작품으로, 김선호는 극 중 주호진을 연기했다.
한 개의 언어도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여러 언어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사람들 사이의 언어 장벽을 허물어 주는 사람. 다중언어통역사라는 직업의 매력이 김선호가 ‘이사통’을 선택한 이유였다. 김선호는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각자의 언어가 있다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 지점이 공감이 갔다. 그때부터 작품에 마음이 열렸다”고 말했다.
대본을 읽었을 때 매력적이었던 지점이 막상 연기를 하려고 했을 땐 부담되는 지점으로 돌아왔다. 일본어, 영어, 이탈리어 등 여러 언어들을 전문 통역사처럼 소화해야 하는 미션이 김선호 앞에 떨어졌다. 김선호는 그때를 회상하자 다시금 부담감이 밀려왔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단순히 대사를 외워야 했던 것이 아니다. 능통하지 않은 언어의 대사에 감정까지 실어야 했다. 김선호는 이에 대해 “대사만 우선 먼저 외운 뒤, 선생님들에게 ‘이 대사는 이 감정으로 연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같이 연기도 해보면서 합의점을 찾았다”고 했다.
언어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대사 자체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주호진의 대사가 MBTI 대문자 ‘F’인 김선호에게는 마음이 덜컥일 정도로 다소 직설적이고, 또 이해가 가지 않았던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김선호는 ‘T’인 고윤정에게 도움을 받았다. 김선호는 “윤정이와 서로 현장에서 대사를 계속 바꿔서 읽었다. 윤정이는 호진의 대사가 공감되고 괜찮다고 하더라”면서 “매번 대사를 바꿔서 해보니까 점차 저도 괜찮아지더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고 점차 흔들리는 과정은 로맨스 코미디의 클리셰 중 하나다. 주호진이 그 클리셰의 전형이다. 김선호는 “단단하고 곧은 인물인 주호진이 점점 차무희에게 물들어가고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고 했다.
주호진의 단단하고 안정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김선호는 가장 먼저 목소리에 변화를 줬다. 평소보다 더 저음인 목소리로 주호진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작품 전체의 무게중심을 잡으려 했다. 특히 차무희와 도라미(고윤정)의 인격이 교차되는 후반부에서, 그 혼란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호진의 톤을 묵직하게 설정했다.
이에 대해 김선호는 “목소리를 단순히 의도적으로 낮게 깐다기보다는, 호진이가 가진 이중성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진을 타인의 말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한 전문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감정 표현에는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톤을 잡을 때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나는 괜찮지만 내 감정 표현은 서투르니, 나의 의도만이라도 정확히 전달하는 데 힘써보자’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했다.
감정 표현이 크지 않고 정적인 캐릭터였기에, 김선호는 오히려 미세한 디테일을 ‘제2의 대사’로 삼았다. 캐릭터가 꼿꼿하고 평면적으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눈빛 하나나 고갯짓 한 번이 시청자들에게는 아주 크게 다가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는 고갯짓 하나도 다 대사라는 생각으로, 아주 섬세하게 접근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상대 역인 고윤정과의 호흡은 필수적이었다. 김선호는 자신이 호진의 틀 안에서 리액션을 할 때,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서 윤정이에게 ‘지금 내 표정이 어떤 감정으로 보여?’, ‘이런 표정을 지어도 될까?’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며 합을 맞췄다”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리액션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약속된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로맨스 서사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이해하는 과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김선호는 주호진이 차무희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입덕 부정기’라는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호진은 결핍이 있는 친구다. 과거 자신이 쓴 책으로 어머니와 관계가 틀어지고, 그 책을 스스로 태워버려 상처받은 기억이 있다”라고 운을 떼며, 호진이 병원에서 무희와 비밀을 공유하던 순간을 결정적인 계기로 꼽았다. 김선호는 “아마 그때 깊은 동질감을 느꼈을 거다. 하지만 그 아픔을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무희를 밀어내고 더 모질게 굴었을 것”이라면서 “‘이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부정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무희에게 물들어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서 상의를 했고, 시점은 제가 세웠다”라고 했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특유의 문어체적인 대사 맛을 살리는 것도 큰 과제였다. 자칫 현실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대사들이지만, 김선호는 작가의 의도를 100% 살리는 쪽을 택했다. 김선호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 말맛 자체를 잃고 싶지 않았다”며 “배우가 감정을 너무 많이 실어버리면 대사 고유의 의미가 날아갈 것 같아서 호진을 더 단단하게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라는 장르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만 매 순간 벌어지지 않는 특별한 일들을 집약해 놓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 작품이 시청자와 맺은 약속이고, 그걸 충실히 이행하는 게 내 몫이라 여겼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선호는 배우로서의 고민과 성장통도 가감 없이 털어놨다. 그는 “배우는 결국 연기로 소통하는 게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저도 사람인지라 안 좋은 반응을 보면 상처받을 때도 있죠. 예전에는 발성 문제로 ‘쇳소리가 난다’는 지적을 받고 고민이 많았어요. 성대 결절이 심하게 와서 의미 전달이 왜곡될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제 직업이니까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합니다. 지금도 계속 발성 연습을 하고 있고,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며 즐기면서 연기하려고 해요.”
차기작을 고르는 기준은 ‘재미’와 ‘공감’이다. 김선호는 “단순히 악역이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 사연이 있고 제가 탐구하고 공부해서 재밌게 풀어갈 수 있는 역할이면 끌린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본을 펼쳤을 때 ‘사람들에게 각자의 언어가 있지’라는 대사처럼,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하거나 욕심나는 지점들이 저를 움직이게 한다”며 웃어 보였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넷플릭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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