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핫플레이스, '달팽이 전망대'를 아시나요? [경상도의 숨은 명산 산성산]

손용석 재부밀양고산악회장 2026. 1. 2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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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밀양 시내.

"밀양이 고향이라고요? 그럼 거기서 가장 특별한 산을 소개해 주세요."

담당 편집자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고향이란 그저 태어난 곳이 아니라 돌아올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마음의 좌표다.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면서 밀양의 특별한 산은 어디일까 헤아려봤다.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구나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 가지산 같은 영남 알프스를 떠올릴 테지만 밀양 시민에게, 또 우리 가족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산이 따로 있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시민들의 추억이 켜켜이 새겨져 있는 산성산 일자봉이다.

산성산(391m)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성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다소 엉뚱하게도 산성 자체는 산성산에 있지 않다. 인근의 자씨산과 호두산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밀양 시민들은 산성산이란 이름보다 '일자봉'으로 더 즐겨 부른다. 능선의 산세가 일자 一로 평평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정상부에는 비슷한 고도의 봉우리 2개가 200m 정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달팽이전망대

산성산은 밀양 시내에 바로 인접해 있어 주말이면 시민들이 오른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그래서 산성산의 듬직한 능선에 드는 순간 주말마다 산에 올랐을 때 내뿜었던 거친 숨결이 되살아났다. 삼문동 송림 숲과 용두목을 지나 천경사를 바라보며 걷고, 헬기장에서 숨을 고르고, 정상 직전의 500계단을 목전에 두고 벤치에 앉아 깊은 심호흡을 하며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 오르는 장면이 들머리에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한 편의 예지몽처럼 펼쳐졌다. 그렇게 500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딛고 오르면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밀양의 사방천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희열에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져 나온다.

313m 무장애 데크길 잔도로 가는 달팽이전망대

오늘날 산성산 들머리 용두목 풍경은 예전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오르던 때와 비교하면 생판 다르다. 과거에는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고,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는 물가로 다소 너저분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싹 사라졌다. 이른바 '용두산 훼손 복원 사업'을 거쳐 이제 동물과 식물이 공존하는 생태 공간이자 시민들의 쉼터로 완전히 되살아났다.

산성산 등산로 안내판.

최근에는 또 다른 변화를 통해 밀양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 2024년 말 용두산 자락 밀양강 절벽 위에 무장애 데크길이 개통됐고, '달팽이전망대'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젠 입소문이 나서 밀양을 넘어 주변 관광객들에게 주목받는 코스가 됐다.

산성산 산행은 이 명소들을 경유해 즐길 수 있다. 밀양강 용두보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무장애 잔도를 걷는다. 도시의 소음이 은은히 멀어지는 313m다. 계단도 바위도 없는 데크길이라 걷는 동안 숨이 차지 않는다. 걷는 이들의 표정도 한결 가볍다.

달팽이전망대는 하늘 위를 걷는 듯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공중 데크로 만들어졌다. 어린아이도, 어르신도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하나의 풍경처럼 아름답다. 나선형 데크 위를 돌아 오르면 밀양강과 산, 그리고 도시의 삶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밀양을 다시 느끼는 힐링 코스다.

산성산에서 내려와 들머리인 가곡동강변공영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수변산책로.

가곡동강변공영주차장에서 달팽이전망대까지는 약 30분 걸린다. 가볍게 나들이 나온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그 너머는 산꾼들의 영역이다. 물론 달팽이전망대에서 금시당까지 일부 관광객도 간다. 하지만 산으로 접어드는 고요한 길은 오롯이 산꾼들만의 코스다.

그런 산꾼들은 정말 눈 감고도 오른다. 오랜만인데도 내가 그렇다. 밀양에 살 땐 거의 매일 올랐던 일자봉이라 가볍고 날렵하게 정상전망대까지 치고 올라간다.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 올라서도 착하다. 과일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고향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봄이면 진달래로 붉게 물드는 종남산부터 부산~대구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 2개의 골프장, 멀리 병풍처럼 둘러선 영남알프스의 늠름한 능선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정겹다.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는 용평교 아래로 코스가 이어진다.

한편 일자봉은 오를 때마다 곳곳에 있는 시인들의 글귀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산상 山上' 한 구절은 늘 마음을 붙잡는다.

'거리가 바둑판처럼 보이고/강江 물이 배암의 새끼처럼 기는/산 위에까지 왔다 (중략) 한나절의 태양이 함석지붕에만 비치고/굼벵이 걸음하던 기차汽車가 정거장에/섰다가 검은 내를 토吐하고/또, 발걸음을 탄다'

밀양 시내가 잘 보이는 일자봉 전망대.

마치 윤동주 시인이 바로 이 자리에 서서 시를 적은 것만 같다. 산을 걷는다는 건 풍경을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산성산 정상에서 오랜만에 인증 사진을 찍고 만어사 방향으로 향한다. 옹달샘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가본다. 예전에는 물이 콸콸 솟아나 여름철 더위를 식혀 주던 고마운 샘이었지만, 지금은 수원이 말라 탁한 물만 고여 있다. 아쉬움과 함께 마음이 아리다.

빠른 걸음으로 금시당으로 하산한다. 금시당 백곡재는 460년 된 밀양의 대표적인 고택으로 조선시대 문신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집을 지을 당시 함께 심은 460년 된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노란 물결을 반짝이며 지금은 젊은 연인들의 사진 성지가 되었다. 학창 시절엔 봄가을 소풍으로 매년 왔던 곳인데 그땐 이렇게 사람이 붐빌 정도로 운치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마냥 신나게 뛰어놀기만 했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보니 정말 명당이다.

"예전에는 그냥 놀기 좋았던 곳이 지금은 머물기 좋은 곳이네."

아내의 한마디가 묘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금시당 수변길을 따라 걷는다. 수면의 편안함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길 끝자락에서 용두보를 볼 수 있다. 용두보는 1904년 경부선 철로 부설 공사로 밀양을 방문한 마쓰시다 데이지로가 사비로 상남면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려고 3년에 걸쳐 건설했다고 한다.

우리는 잔도로 내려가지 않고 일자봉 산자락에 있는 용궁사와 천경사 두 절 중 천경사에 들렀다. 산성산 일자봉 능선과 굽이치는 밀양강을 보기에 안성맞춤의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커피와 차를 마시며 머무르기 좋은 장소였다.

영남루.

조선 시대 3대 누각이 날머리

오늘 산행의 끝 여정은 영남루다.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누각을 이루는 우리나라 국보였다. 보물이었다가 2023년 승격됐다. 영남루에 가려면 푸른 송림을 지나야 한다. 소나무 군락지는 여름이면 보랏빛 맥문동 물결이 넘실대고, 가을이면 하얀 구절초가 소나무 내음과 함께 그윽함을 선물한다.

영남루에 서니 강을 굽어보는 웅장한 누각이 역사와 풍류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밀양이 어떤 도시였고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누각에 앉아 푸른 강물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이 필요 없다. 바람에 산행의 노고가 흩어져 나가고 강물에 마음의 번뇌가 씻겨 내려간다.

산행 길잡이

가곡동강변공영주차장~잔도~달팽이전망대~산성산(391m)~옹달샘~금시당~금시당 수변로~천경사~삼문동송림유원지~영남루 ※거리 10km 소요시간 4시간

교통

자가용 남밀양 IC~용두교 직전 가곡둔치주차장. 기차 밀양역~수산 2, 1, 2, 4-2번 등 수시로 다니는 버스 이용해 용두교 하차~산성산 입구(10분 도보)

맛집(지역번호 055)

밀양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들이 있다. 밀양땡초김밥(351-3050)의 톳김밥과 땡초김밥은 산행하면서 먹기에 딱 좋은 별미다. 꼬마김밥처럼 말아주는데 맵지만 중독성이 강해 계속 들어간다. 만복이쭈꾸미낙지볶음 밀양점(356-3355)은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는 인정받는 맛집이다. 불향이 제대로 나는 쭈꾸미볶음에 아삭한 콩나물을 얹어 맛볼 수 있다. 부일갈비(355-6789)는 산행 후 허기를 달래기 좋은 '단짠단짠' 양념돼지숯불갈비와 해물된장찌개가 특히 맛있다. 주차장과 좌석 모두 넓다. 동화반점(354-3445)은 친절한 화교가 운영하는 맛집으로 모든 요리가 빠짐없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야끼우동이 가장 취향에 맞았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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