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냄새 [포토 다큐]

겨울의 첫 차가운 공기는 언제나 혼자 오지 않았다.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그 공기가 느닷없이 코로 들어오는 날이 있다. 어떤 향마저 느껴지는 그 차가움은 머릿속을 휘저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에게 그것은 대개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이거나,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장면이다.

겨울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작년 11월쯤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회사 건물을 나서며 들이마신 찬 공기에, 지난겨울에 게을러 놓쳐버린 겨울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눈 쌓인 한라산 백록담을 찍기 위해 오래 날짜를 골랐다. 기상청 예보를 확인하고 제주로 향했다. 하지만 등산 당일, 정상에 눈이 내려 통제될 수 있다는 예보가 나왔다. 예보를 믿고 무거운 카메라는 내려두고 작은 액션 카메라만 챙겨 올랐다. 그날의 백록담은 뜻밖에도 맑은 하늘을 보여주었다.

얼마 뒤에는 강 위에 피는 물안개와 나무에 맺힌 상고대를 찍기 위해 새벽을 달려 춘천으로 향했다. 낮은 기온과 높은 습도, 잔잔한 바람을 계산했다. 하지만 소양강 변에는 얇은 점퍼는 물론 반소매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상고대는 피지 않았다.
다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겨울 별자리를 찍기 위해 달 없는 그믐과 맑은 날을 골라 속초의 산으로 들어갔다. 조건은 예보대로였지만, 겨우내 보기 힘들던 미세먼지가 그날따라 태백산맥을 넘어 몰려왔다.


한 철에 세 번이나 빗나가니 마음이 잠시 울컥 올라왔다가 곧 가라앉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런 시기가 있는 것이고, 다만 그것이 연달아 왔을 뿐이다.
돌아보면 남은 것도 있었다.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갔더라면 찍을 생각도 안 했을 백록담의 파노라마가 남았고, 원주에는 인상적인 빙벽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속초의 미세먼지를 피해 올라간 홍천 구룡령은 해발 1,000m 정상까지 사진에 방해가 되는 전봇대가 이어져 있었다. 다음에 별자리를 찍게 된다면, 그곳은 미리 후보지에서 제외할 수 있다. 한겨울 바닷가에서 서퍼를 만난 일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늘 좋기만 했던 적도, 늘 나쁘기만 했던 적도 없었다. 준비가 충분해도 어긋나는 날이 있고, 급히 바꾼 선택이 더 오래 남는 장면을 남기기도 한다. 겨울을 찍으러 다녔지만, 돌아보니 남아 있는 것은 겨울의 장면만은 아니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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