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AI시대에 필요한 미덕은 공감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2026. 1. 2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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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며 빨랫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단순히 양이 늘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복잡해지는 게 골치다. 아이 입을 닦는 가제 수건은 삶아야 하고, 방수 코팅된 턱받이는 세탁기에 넣지 못해서 손으로 비벼야 한다. 건조기를 돌리면 줄어드는 내복은 일일이 널어야 한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등장했지만 빨래 시간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빨래의 복잡성만 늘어난 꼴이다. 기술이 아무리 시간을 줄여줘도 결국 사람은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업무를 만드는 것이다.

영국 역사학자 시릴 파킨슨은 이런 현상을 ‘파킨슨의 법칙’이라 명명했다. 모든 업무는 업무 시간을 채울 때까지 팽창한다는 통찰이다. 예컨대 워드프로세서의 도입으로 문서 작성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자 공무원들이 남는 시간에 폰트와 자간을 다듬어 ‘보기 좋은 보고서’를 만드는 데 시간을 쏟게 된 현상이 대표적이다. 본질적인 내용보다 형식미에 집착하는 공공기관 특유의 문서 양식 역시 팽창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는 미래의 노동도 이 궤적을 따를 개연성이 있다. 자료 조사와 분석, 초안 작성 같은 업무 시간은 대폭 줄어들지 모른다. 이상적으로 보면 줄어든 시간으로 여가를 즐기는 게 좋겠지만, 파킨슨의 통찰처럼 남은 업무 시간은 어떻게든 다른 업무로 채우게 마련이다. 새로이 업무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올 유력한 후보는 ‘감정’을 건드리는 영역이다. 모두가 엇비슷한 성능의 AI를 비서로 거느린 상황에서, 결과물의 차이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이 새로운 것만도 아니다. 중국 당서(唐書)에는 관리 등용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강조한다. 외양[身]과 말하기[言], 글쓰기[書]와 판단력[判]이다. 오늘날로 치면 수능 성적이나 다름없는 ‘서’와 ‘판’의 영역은 이미 AI가 인간을 압도 중이다. 결국 인간에게 남은 경쟁력은 태도와 공감, 이른바 ‘감정 지수(EQ)’뿐이다. 기계가 완벽한 논리로 답을 내놓을 때, 인간은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방식을 전담하는 식으로 분업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 사실이라 해도, ‘빨래는 다 똑같다’며 아내를 쏘아붙이는 건 현명한 일이 될 수 없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핀잔만 듣게 된다. 손빨래에 들어가는 정성을 이해하고, 마땅히 나도 동참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에는 더 맞는 일이란 걸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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