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강원 고립·은둔청년] 3. 우리가 고립된 이유
결국 내가 문제라고 느꼈다”
무너진 가족관계·거듭된 퇴사
사회적 연결망서 밀려난 시간
수도권 아닌 강원도 택했지만
마주한 것은 더 높은 단절의
또래 찾아 백방 노력해도 허사
‘모일 곳 없는’ 현실에 강제 고립
지원센터서 찾은 재기의 불씨
비슷한 고민 공유하며 용기 얻어
“ 단계적 성장 돕는 케어 시스템
마음 나눌 작은 소통공간 절실”
일도 가족도 기댈 곳 없는 일상
“ 매일이 섬에 갇힌 기분…지역이라 더 깊은 소외”
인프라 결핍이 만든 또 다른 창살

■ ‘고립’을 택하기까지
A(34)씨가 주변과 단절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 진학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한 반에 서른명쯤 되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친구들과 다른 대학에 진학한 A씨는 그때부터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졸업 후 또 다른 대학을 진학했지만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나다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취업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일과 집’을 반복하는 생활에 지쳤다. A씨 스스로 “고립됐다”고 느낀 시기는 2018년. 지금부터 7년 전이다.
그는 “소셜 모임도 나가봤지만 조금만 결이 다르면 ‘강퇴(강제탈퇴)’를 시켜버렸다. 결국 소모적인 만남이라고 느꼈다”며 “일회성 만남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집이라고 마냥 쉴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가족들은 기댈 언덕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쳐갔다. 부모님과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그는 자취를 택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안 좋게’ 끝난 직전 회사에서의 일이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이렇게 사는게 맞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내가 문제’라는 자아비판이 시작됐다. 자존감은 끝도 없이 떨어졌다.
이후 A씨는 취직과 퇴사를 반복했다. 가장 길게 쉰 기간은 6개월. 그래도 최근에는 2년 9개월 정도 일을 하긴 했지만, 지난해 8월부터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상황을 봐서는 갖고 있던 자동차도 처분해야 될 것 같단다. A씨는 “처음에 집에 있었을 땐 좋았는데 혼잣말을 계속 하게 되더라”라며 “섬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수다로 풀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위로는커녕 ‘네가 문제’라는 식의 반응이 되돌아왔다”고 했다.
■ 치유되지 못한 상처
30대 B씨는 ‘열심히’ 살려고 했다. 스무살 남짓부터 이런저런 행사도 많이 뛰었고 일명 ‘노가다(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화목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도망쳐 어머니와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중학교 때쯤 부모님은 갈라섰지만 서류상 이혼으로 처리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지원은 받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부모님은 법적으로도 남남이 됐다. 혼자가 된 어머니도 나름대로 외동 아들을 기르느라 고생을 했지만 아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금전적으로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서울 고시텔에서 지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B씨는 ‘겉돌듯’ 지내는 생활에 지쳐 2019년 그나마 연고가 있는 강원도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 때면 6개월 씩 집에만 있기도 했다. 어머니가 사다준 라면과 배달음식으로 버텼다. 밖에서는 밝게 지냈지만 집에 와서는 매일 우는 삶이 반복됐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청하는 일도 일단 스스로가 건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계속 안 좋은 상태로 있다보니 누군가와 교류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무너질 때가 많았지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놓지는 않았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 지방에 산다는 차별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었다. 또래를 만날 수 없는 환경은 또 다른 고립과 단절로 이어졌다.
A씨는 지금도 서울을 왔다갔다한다. 집에만 있으니 무기력해지고 몸이 아파왔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진료한 의사마저도 “취미가 없냐”고 물어봤지만, A씨라고 취미가 없는게 아니었다. 야구경기를 보는 걸 좋아하지만 강원도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는 “수도권이면 비슷한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또래들이 많을 것”이라며 “문화도 많고 혼자서도 즐길거리들이 있는데 강원도는 커뮤니티가 부족하다”고 했다.
B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냥 놓고 지낸 건 아니다”라고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청년 사업이나 자신을 구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그나마 춘천 청년청이 숨통이 돼 줬다. 청년으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보니 의지도 됐고 고립감도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하지만 청년청은 예산이 삭감되면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해산됐다.
B씨는 “밥도 같이 먹고 청년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지역은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다”며 “서울 같은 경우는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공간이 있어서 언제든지 편하게 와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할 수 있어 부럽다”고 했다.
이들이 사단법인 늘봄청소년의 강원권역고립은둔지원센터를 찾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와 고민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 자신의 일상과 삶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A씨는 “센터에 와보니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며 “내가 비정상은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됐다”고 했다.
B씨는 “생기 넘쳐야 하고 에너지가 많이 나올 세대들인데 황금같은 시간을 놓치고 있다”며 “바로 일자리로 데려다 주는 게 아니라 청년들끼리 한 주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두바이쫀득쿠키’ 만들면서 소통하면 사회에 안전하게 젖어들 수 있고 또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단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 다시 세상으로
A씨와 B씨 모두 이제는 긴 어둠의 터널 끝에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려 준비 중이다. A씨는 올해 다시 직장을 알아보려 계획하고 있다.
조금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잘라내기 보다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봤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A씨는 “성격검사를 해보니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 보다는 피하는 성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며 “그런 성향을 좀 바꿔야 될 것 같다”고 했다.
B씨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이다 보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연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몇 십 번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B씨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집에만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싶고 특수한 시각으로 봐서 결과적으로 나중에 (나 스스로에게)마이너스가 될까 우려도 되지만 지금은 ‘나부터 살고 보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고립·은둔 청년’으로 긴 시간을 보낸 이들은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A씨는 “상처가 많아 이러고 있는건데 너무 이상하게 보지도, 또 너무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저 ‘혼자 있고 싶어 하는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B씨 역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나 스스로 편안한 에너지를 갖고 있고 좋은 사람이 돼야 의미있는 공동체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도 당부했다.
B씨는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청년들이 많다”며 “단순히 ‘돈 줄게’, ‘일자리 매칭해 줄게. 일하고 살아’라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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