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넘기기] 어려움을 당해서야 마음의 품새 드러나죠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 얻는다는 것

성선경의 시집 「풍죽」은 바람 부는 대숲을 거닐며 삶의 깊은 지혜를 퍼 올린 선비의 마음을 엿보는 듯하다. 대나무 숲에 깃든 사유는 변주를 통해 시화된다. 성선경 시인의 마음은 '대숲'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의 마음은 대숲에 깃들며, 사유를 펼쳐간다. 시의 제목 '풍죽 1', '풍죽 2', '성죽', '대숲', '다시 대숲', '대숲에 들어'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선경 시인과 함께 대숲을 거닐며 발걸음을 옮겨보자. 처음에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고 나중에는 깊은 내면의 대숲에서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세상살이로 말하자면/ 어려움을 당해서야 그 마음의 품새가 드러나듯/ 늘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제멋이다 몇 해 전/ 서울 동대문 프라자에서 간송전을 보다가/ 풍죽(風竹) 복사본을 한 점 구해다 놓고/ 한참을 잊고 지내다 새삼/ 액자를 하여 거실 벽에다 걸어 놓았다/ 마음 어지러운 어느 날/ 가만히 바라보니 내 마음이 다 환해진다/ 대숲에 든 듯 새소리/ 댓잎 부딪는 소리 들린다/ 역시 푸른 대나무도 바람을 맞아야/ 어려움 이겨 낸 옛 어른 풍모 보여준다/ 여린 가지와 흐린 묵향 속에서/ 어디 저런 기품이 숨어 있었나?/ 새삼 한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대숲에 든 듯/ 세속을 벗어난 듯/내가 잔잔히.('풍족 1' 전문)
시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간송전에서 구입한 '풍죽(風竹)' 그림을 걸어놓고 시적 화자는 대나무 숲을 거닌다. 바람 부는 대숲에서 나는 댓잎 소리와 새소리도 듣는다. 풍죽도를 보며 삼매경에 들었다. 바람을 맞고 그 바람을 이겨낸 풍죽에서 어른의 풍모와 기품을 느낀다.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와 자세를 마음 깊숙이 끌고 들어온다. 어쩌면 시적 화자가 풍파를 겪고 난 뒤의 자신의 모습을 '풍죽'에서 발견했을 수도 있다. 지향하는 삶의 그림을 보고 있다.
시인은 '한갓 대나무도 만고풍상을 겪어/ 그것을 슬기롭게 이겨 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것('풍죽 2')을 시집 곳곳에서 일관된 목소리로 전한다. 대나무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살면서 불어오는 바람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흔들리면서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며 자라듯 삶도 그런 것이라고 한다.

'물속에 잠긴 인간사를 어찌 다 알겠나', '보이는가 싶다가도 잠기고 마는/인생은 모두 다 풀등 같은 것'('풀등 2')에서 보여지는 현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인간사를 말한다.
'이제 나는 망우(忘憂)의 숲에 들었습니다', 속을 비운 대나무같이 나도 망우하겠습니다', '내가 지키고자 한 삶이 /결국 대나무 마디 같은 것이었나요', '버려도 될 많은 각오들이 다/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 같은 것이었나요'('대숲') 시적 화자는 대숲에서 속을 비우고 근심을 잊겠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다짐한다.
'대숲에서 멀어지면 사람은 곧 속(俗)된다네', '내 이제 내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겠네/ 잠들 듯 잠에서 깨어나듯/ 내 이제 이 청정에 몸 뉘겠네.('대숲에 들어')에서 청정의 대숲에 몸을 뉘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온갖 것들에 대한 걱정을 잊고 청정한 대숲에 들어서 청정한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화자의 태도가 엿보인다.
'사랑이란 늘 눈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눈망울'('흰독말풀꽃'), '저울로는 달 수 없는 높은 질량의/ 생각과 상념과 체념의 시간이/ 빅뱅의 그 직전처럼 꼭 찬 내부'('뜨거운 돌')에서처럼 끝없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알고 보면 시(詩)란 / 사물의 원형을 새로이 발견하는 일', '처음 나무옹이를 다듬어 앉힌 사람은/ 기원의 시를 쓰는 시인'('솟대') 시인은 사물의 원형을 새로이 발견하려고 무수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시를 쓰고, 굴곡진 일상들을 대나무처럼 안고 흔들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온 시인은 아름답다. 기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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