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세요···자연은 스스로 ‘기적’이 될 테니

오경민 기자 2026. 1. 2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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삵·담비도 돌아왔다…의성 고운사 사찰림서 발견한 ‘자연의 힘’
지난해 봄 대형산불 피해(아래 사진)를 입고 자연복원이 진행 중인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에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야생동물들이 대거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왼쪽부터 지난해 8월22일 관찰된 오소리, 9월12일 관찰된 멸종위기종 담비, 10월1일 관찰된 삵.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 제공

작년 봄 영남 산불로 숲 98% 소실
인공 조림 대신 자연복원 첫 시도
어린 식물 움트며 회복 징후 뚜렷
멸종위기종 포함 야생동물 삶터로

지난해 봄 초대형 산불로 피해를 보고 인공조림이 아닌 자연복원을 택한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에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대거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안동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 등 환경단체는 26일 경북 의성 고운사에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중간보고회’를 열고 “의성 사찰림의 자연복원 과정을 관찰한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복원 속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포유류 17종, 야생조류 28종이 발견됐으며 참나무류 등의 맹아와 함께 고사리, 야생화 등도 관찰됐다는 것이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기경석 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 홍석영 박사가 각각 식생·동물·음향·곤충 영역의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고운사 사찰림 249㏊(헥타르) 가운데 97.6%인 243㏊가 소실됐다. 고운사와 환경단체는 지난해 8월부터 자연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생태계 조사에 착수했다. 자연복원은 나무를 인위적으로 가져다 심거나 불에 탄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생태계가 회복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이런 대규모 산림 피해에 자연복원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자연복원이 진행 중인 고운사 사찰림 전경. 그린피스 제공


연구진은 고운사 사찰림이 단순한 수목 재생을 넘어 입체적인 회복 양상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규송 교수는 숲의 골격이 되는 참나무류 등의 맹아 밀도가 ㏊당 3922본(모종이나 어린 식물을 세는 단위) 나타나는 등 숲 면적의 76.6%에서 회복 징후가 뚜렷했다고 말했다. 맹아와 고사리 등이 ‘녹색 붕대’ 역할을 하면서 토양 침식 위험은 산불 직후인 지난해 4월보다 3.57배 낮아졌다.

식생이 왕성히 회복되면서 고운사 사찰림은 멸종위기종 동물의 피난처이자 이동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수달, 담비, 삵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해 17종의 포유류가 확인됐다. 한상훈 소장은 “중대형 포유류의 회복 잠재력은 높게 나타났으나 설치류 등 소형 포유류의 종 다양성은 일시적으로 낮은 상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올빼미, 큰소쩍새 등 28종의 야생조류도 확인했다. 기경석 교수는 “오색딱따구리 등 산림 건강성 지표종이 출현한 것은 곤충과 조류의 먹이사슬이 복원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불에 탄 고사목이 딱따구리와 곤충 등의 서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벌채와 획일적인 조림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곤충 조사는 곤충 활동이 줄어드는 10월에 시작돼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곤충 분야 조사를 맡은 홍석영 박사는 올해 계절별 모니터링을 통해 곤충 군집을 조사할 예정이다.

고운사의 주지 등운 스님은 “지난해 9월쯤 산 정상에 올라가보니 고사리 등 온갖 풀들과 나무들이 다 움트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자연은 자연에 맡겨두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소나무뿐 아니라 다양한 식생이 함께 어우러져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고운사가 지난해 3월 대형 산불 이후 인공조림 대신 자연복원을 택한 것이 생태계 회복을 앞당긴 요인이라며, 자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숲의 자생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산불 이후에도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국내 산림 정책에 자연복원의 가치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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