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뜯고, 영화계 털리고, 관객은 속았다 [현장 리포트]

이은진 2026. 1. 26. 21: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사 개입 구조 속 창작자 수익 어디로 사라졌나
깜깜이 정산과 불공정 계약...영화산업 신뢰는 무너져
투명 정산·표준계약·법 개정, 공정한 영화생태계로 가는 길
[지데일리] “관객은 정가를 냈다. 그러나 영화인은 제값을 받지 못했다.” 26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영화티켓 할인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간담회’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겉으로는 ‘할인’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영화업계에 구조적 손실을 떠넘기는 불합리한 제도. 그 이면이 드러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주최는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이정문 국회의원이, 주관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배급사연대, 영화인연대, 참여연대가 맡았다. 이날 논의는 단순히 티켓 가격 문제를 넘어, 영화 산업의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감춰진 ‘할인’의 덫, 누가 웃고 누가 울었나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는 발제에서 현행 티켓 할인 구조의 불균형을 낱낱이 드러냈다. 영화관·배급사·제작사라는 전통적 3자 거래 구조에 이동통신사가 끼어들면서, 제작이나 투자와 무관한 통신사가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모순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동통신사가 마치 고객을 위해 손해를 보는 듯한 마케팅을 하지만, 실제로는 고객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큰 유통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중간 마진 문제가 아니다. 이동통신사를 통한 예매가 전체 티켓 판매의 절반에 근접하는 상황에서, 통신사와 영화관의 계약 구조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할인은 고객의 권리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창작자의 몫을 깎는 또 다른 형태의 산업 착취로 변질된 셈이다.

이 대표는 해결 방안으로 ‘이동통신사의 할인비용 분담’과 ‘티켓가격의 정상화’를 제안하며, “할인을 빌미로 한 가격 거품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명하지 않은 정산, 보이지 않는 손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추은혜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영화계의 불공정 구조를 법률적 시선으로 해부했다. 티켓 가격은 오른 반면, 제작사와 배급사의 수익은 줄었다. 이유는 영화관의 일방적 ‘이중가격제’ 정책 때문이다. 영화관이 통신사·카드사와 협의 없이 과도한 할인 마케팅을 벌이면서, 결국 그 손실이 제작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정산의 불투명성이다. 할인 판매 내역은 깜깜이 정산으로 처리되고, 예매 수수료나 포인트 차감 금액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추 변호사는 “공정위 신고와 불복 소송 결과를 기다리다가는 영화업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시급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세 가지. 첫째,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을 통한 ‘투명한 정산 시스템’ 구축. 둘째,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한 ‘일방적 할인 방지’. 셋째,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상생협의체 재정비’다.

법과 제도, 영화 생태계를 살릴 수 있을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한경수 변호사는 세 번째 발제에서 산업 구조적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영화산업이 ‘서비스 상품화’되는 흐름 속에서, 타 산업과 유사한 규제 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통한 판매촉진비용 전가 방지 ▲‘순 입장료’ 개념을 신설한 영비법 개정 ▲공정 정산을 위한 시행규칙 개정 ▲표준계약서 보완을 제안했다. 

한 변호사는 특히 “입장권이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산업 공정의 결과물”임을 강조하며, “투명한 정산 의무를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류용래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경쟁과장은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동통신사와 배급사는 법적으로 직접 거래 관계가 없어 ‘거래상 지위남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과,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시 예상치 못한 부작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본 사안을 면밀히 검토해 공정거래법 위반이 확인되면 적극 조치하겠다”고 약속하며 업계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남겼다.
영화티켓 할인제도의 불공정성과 정산 투명성 문제를 다룬 국회 간담회에서 영화계는 이동통신사·영화관의 할인비용 전가를 비판하며 제도개선과 공정한 수익 분배, 영비법·유통업법 개정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제공

“그 돈은 어디로 갔습니까?”... 영화인의 절규

김윤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는 이날 토론에서 문제의 본질을 ‘투명성’으로 요약했다. 과거에는 티켓에 실제 할인 금액이 표시되어 소비자가 정가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관객이 1만1000원을 내고도 영수증에는 7000원만 찍힌다. 소비자가 소비를 했는데, 그 지불액이 창작자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 차액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제작자가 정산을 믿을 수 없으면 투자도 제작도 멈춘다”고 경고했다. 영화의 경쟁력은 수익의 투명한 분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 또한 “소비자는 제값을 냈다. 그러나 영화계는 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통신사가 영화 시장에 빨대를 꽂고 있는 현실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김지희 영상방송콘텐츠산업과장은 신중한 접근을 취했다. 그는 “상영관 자율성과 정산 공개 범위를 놓고 공정위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들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문체부에는 영비법 관련 조사권한이 없어 법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이정문 국회의원은 “공정위의 신속한 결론과 이행 조치를 요청하며, 필요한 경우 국회 차원의 법률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영화산업이 ‘상생’의 구조로 돌아가기 위한 근본적 틀을 재설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번 간담회는 단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할인’이라는 이름의 마케팅이 영화 생태계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싸게 본다고 믿지만, 그 ‘싸짐’의 대가는 누군가의 임금을 깎는 데서 비롯된다. 산업의 생명줄이 되어야 할 유통 구조가 오히려 창작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공은 국회와 정부, 그리고 영화계로 넘어왔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가 단초가 되겠지만, 그보다 앞서 영화계 스스로가 투명한 정산 시스템, 표준계약서 이행, 공정한 수익분배 구조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시스템적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관객이 어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외쳐도 제작 현장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관객은 정가를 냈다. 그러나 영화인은 제값을 받지 못했다.' 이는 이제 영화계의 슬로건이 아니라, 제도개선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평가다. 공정한 티켓이 공정한 산업을 만든다. 그 첫 걸음은 할인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구조적 불공정의 베일을 벗기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