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도륙한 정권의 미래[기자칼럼]

이란 반정부 시위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불타올랐다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사그라들었다. 사실 이란 시위의 불길을 꺼뜨린 것은 물이 아니라 이란 시민들이 흘린 피였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이란 당국의 유혈진압이 극에 달했던 지난 8~9일 이틀간 발생한 사망자 수만 3만6500명 이상이라고 영국 기반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전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역시 비슷한 수치의 사망자 수를 추정했다. 시위가 벌어진 이란 400여개 도시 거리에는 수백, 수천명의 시민들의 피가 흘러 넘쳤다.
이란 당국이 저지른 일을 ‘진압’이라 부르는게 더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행한 민간인 학살이다. 유사한 사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고 타임지는 지적했다.
지난 8일 전면 차단됐던 인터넷이 일부 복구되면서 숨겨진 학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대지진보다 심한 참상” “전쟁터” “지옥”이라고 목격자들은 말한다. 보안군은 오토바이를 타고 시위대를 향해 소총과 산탄총, 고무탄을 쐈다. 저격수는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시장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다. 베트남전 등에 사용된 중기관총 두쉬카가 사용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외신들이 영상·목격자 증언에 기반해 보도한 참상이다.
이란 당국이 거리에 나온 모든 이들을 잔학하게 살해하려 했기 때문에 시위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위가 끝났다고 할 수 없다. 학살의 진상이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았고, 이란 당국의 탄압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란 시위 관련 사망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며 적게는 수천명, 많게는 수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초보적 통계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으며 3만명 조차 과소평가된 수치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 당국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체포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총 체포자 수가 4만명이 넘는다. 부상자를 치료한 의료진·구급대원까지 체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시위를 선동·협력한 사람의 재산 전체를 몰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HRANA는 전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결코 끝날 수 없는 더 큰 이유는 시위를 촉발한 근본적 이유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시장 상인들이 시작한 작은 시위가 불과 2주 만에 이란 신정체제를 위협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이란 정권의 정당성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제재 속 경제난을 해결하는데 무능한 모습을 보였던 이란 정권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의 이란 공습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그동안 자신했던 안보마저 허점투성이였음을 드러냈다. 스스로 초래한 취약함에서 비롯한 체제 위기로 인한 반발에 이란 당국은 오직 정권의 생존만을 위해 시민들을 잔학하게 학살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란 정권은 여전히 경제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시위 폭력 진압과 인터넷 차단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최소 1억2500만달러(약 1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란 시민들은 또다시 “서서히 죽느니 차라리 지금 죽겠다”며 거리로 나설 수 있다.
“이슬람정권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심지어 환경적 측면에서까지 무너져 내렸다.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뿐이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국민을 도륙한 정권에 미래는 없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261429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182121005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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