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씁니다 50년 농부일기"

윤평호 기자 2026. 1. 2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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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달도 말일이 임박했다.

요즘에야 기록의 편의를 돕는 도구가 많지만 농부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무렵인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종이와 펜이 전부였다.

한여름 뙤약볕 팥죽땀을 흘리며 일군 농사 터전이 송사로 자칫 다른 사람에게 뺏길 뻔 했을 때 수십 년간 써온 농부일기가 조 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져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일기 쓰기로 농사공부를 계속하며 다른 동네의 농부가 새 작목을 심기 위해 조 옹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일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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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환 옹. 54년째 매일 농부일기 작성
평소 메모 습관, "기록이 건강유지 비결"
윤평호 기자

새해 첫 달도 말일이 임박했다. 해가 바뀔 때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결심을 한다. 결심이 휘발되지 않도록 다이어리나 스마트폰에 기록도 남긴다. 기록은 마음 담기에 좋은 방법. 하는 일에 마음을 담으면 업이 된다. 50년 넘게 농사일을 비롯해 일상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기는 농부가 있다.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의 농부 조기환(90·사진) 옹이다. 그의 고향은 서울시 종로구. 서울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부모님이 아산으로 이주하며 회룡리에 정착했다.

호서대 아산캠퍼스 인근의 회룡리는 조 옹의 가족이 이사한 당시만 해도 벽촌에 가까웠다. 타지서 온 탓에 선주민들의 텃세도 있어 아산살이는 쉽지 않았다. 조기환 옹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농사에 종사했지만 주변에서 농사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매일매일 그날치 농사일을 적어 실수를 줄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요즘에야 기록의 편의를 돕는 도구가 많지만 농부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무렵인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종이와 펜이 전부였다. 조 옹은 직접 종이에 선을 긋고 주거, 교통, 잡비 등 세부 항목을 구성해 농사일기 겸 가계부를 완성했다.

조기환 옹에게 농부일기는 여러 모로 도움됐다. 조 옹은 "하루 일을 마치고 밤이면 일기를 쓴다"며 "피곤해 전날 쓰지 못하고 잠들었으면 다음 날이라도 꼭 쓴다"고 말했다. 농부일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일화도 있다. 한여름 뙤약볕 팥죽땀을 흘리며 일군 농사 터전이 송사로 자칫 다른 사람에게 뺏길 뻔 했을 때 수십 년간 써온 농부일기가 조 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받아들여져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일기 쓰기로 농사공부를 계속하며 다른 동네의 농부가 새 작목을 심기 위해 조 옹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일도 생겼다.

농사채 규모는 줄었지만 아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농사일과 일기 쓰기를 지속하는 조기환 옹의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는 본보기가 됐다. 조 옹의 딸인 조미경(56) 씨는 "비슷한 연세의 다른 분들은 치매로 어려움도 겪지만 아버지는 메모와 일기쓰기 습관 덕분인지 인지가 좋으신 편"이라며 "기록이 아버지의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조기환 옹은 "농사 짓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며 "그동안 써온, 그리고 앞으로 써갈 일기가 보물 1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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