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Pick] 너도, 나도 녹음한다...대한민국은 지금 ‘녹취의 시대’

#2 2025년 12월, 스마트 워치 기업 페블이 신형 스마트 반지 ‘페블 인덱스 01’을 공개했다. 가격이 75달러(약 11만 원)인 이 스마트 반지는 기존 스마트 반지처럼 심박수 측정 등 건강 추적 기능을 넣는 대신 블루투스, 마이크, 배터리 등만 있다. 반지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마이크를 통해 간단한 음성 메모와 알림을 기록할 수 있다. 녹음된 음성 메모는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되며, AI가 녹음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저장한다. 녹음 정보는 클라우드가 아닌 개인 스마트폰에 저장된다.
#3 녹취가 일상이 되고 각종 법적 다툼 때 유력한 증거물이 되면서, 녹음 파일을 문서로 풀어주고 법정에 증거로 제출해주는 속기사가 인기 직종이 되었다. 법조타운인 서울 서초동에는 속기사 사무실이 30~40곳 정도 밀집되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가기술자격증인 한글속기 1~3급 지원자는 2012년 6,004명, 2013년 7,018명, 2014년 8,602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녹음 파일의 녹취 비용은 30분에 8만~12만 원, 1시간에 18만~30만 원 수준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전자상가를 가보면 소형 녹음기는 담뱃갑부터 일회용 라이터, 혁대, 모자, 안경, 넥타이핀, 단추, 키홀더, 자동차 스마트키, 신분증, 키링, 팔찌 등 형태가 무궁무진하다. 성능, 녹음 시간, 디자인에 따라 가격대는 보통 4만~30만 원대다. 이 소형 녹음기의 판매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에도 녹음 기능이 있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은 ‘녹취의 시대’이다. 취는 녹음과는 다르다. ‘녹취’는 ‘원래 방송 따위의 내용을 녹음하는 것을 의미하나, 법적인 의미에서는 증거물로 제출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발언을 녹음기 등의 장비를 이용하여 녹음하고 확보해두는 것’을 말한다. 이 녹취한 것을 글, 문서로 옮긴 것이 바로 ‘녹취록’이다. 녹취록의 진위,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녹취 파일을 녹취사, 속기사, 행정사 등 제3자인 전문 용역자에게 맡기고 일종의 공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녹취록이 원본과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녹음의 필요성이 커져가며, 대한민국이 ‘녹음(錄音) 공화국’이 되고 있다. 직장인, 대학생, 의사, 공무원, 자영업자, 영업 사원 등 직종을 불문하고 각자 스마트폰이나 각양각색 녹음기를 품은 채 몰래 녹음하는 이가 많다. 일례로 근로자는 상사의 갑질과 부당 지시, 괴롭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직장 상사는 무고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나고 대화하는 순간 녹음기를 켠다.
의료계에선 어떨까. 환자는 의료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느낄 때 녹음기를 켜게 되고, 의사 역시 방어적으로 녹음기를 갖고 다니게 될 것이다. 모 병원에서는 환자와 관계에서 비롯되는 시비를 방지하기 위에 신분증형 녹음기를 100~1,500개씩 단체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학생이라면 강의 내용을 복습하기 위한 용도로 선생님, 교수님의 말을 녹음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용품에 녹음기를 장착함으로써 학교에서의 일상을 파악하기도 한다.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다. 민원인과 그를 대하는 공무원, 또는 ‘직권 남용’이란 죄가 공무원 사회에 녹음을 확산시켰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처리에 반대했으나 강압에 의해 처리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 녹음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물론 노동자의 법적인 보호를 위한 녹음을 사전 고지하는 경우도 있다. 콜센터에 전화해 상담원을 연결하면 흘러나오는 고지가 대표적이다. “지금부터 이 대화 내용은 녹음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물론 법정에서 이 녹취가 무조건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는다. 그것에는 판사의 재량과 판단이 작동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서 녹취는 재판에 의한 법적 판단에 앞서 상대에 대한 최선의 선제 공격 무기가 되어버렸다.
언론은 이 녹취를(그것이 전부이든, 일부 사용자에게 유리한 부분이든) 일단 ‘정확한, 증거 있는 팩트의 뉴스 소스’이기에 보도하기 때문이다. 그 녹취에 의해 ‘그 인간의 실체가 그랬어?’라고 대중에게 인식되는 순간 이미 법정에 앞서 여론의 재판에서 패배하게 된다.

필자의 후배는 직원 300여 명 중 회사의 특성상 여직원이 약 40%나 되는 기업의 차장이다. 후배에게는 철칙이 있다. 첫째, 되도록 여직원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단 둘이 있게 된다면 밖에 다른 직원이 다 있는 시간에 공개된 회의실을 사용하고 문은 항상 열어놓는다. 둘째, 여직원의 동의 하에 혹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항상 스마트폰 녹음 장치를 ‘온(on)’한다. 물론 남자 직원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장소가 조금은 편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녹음, 도청 등이 금지되어 있다. 법조문을 그대로 살펴보자.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16조(벌칙)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
그러나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상황과 관할 구역에 따라 합법성 여부가 크게 달라진다. 먼저 자신이 대화 당사자인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합법이다. 즉, 자신이 속한 대화는 자유롭게 녹음할 수 있다. 반면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물론 합법이라 하더라도 해당 녹음이 민사 소송이나 형사 소송에서 증거로 채택될지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녹음 과정에서 협박이나 강요가 있었다면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또 하나 법적 문제를 떠나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은 서로의 신뢰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비밀 녹음은 대화 당사자가 직접 녹음한 경우에만 합법이며, 제3자가 몰래 녹음하면 불법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의 CCTV 설치 대수는 약 2,000만 대로 2021년 행안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3040대 직장인은 하루 평균 약 98회 CCTV에 노출된다고 한다. 물론 이는 민간 CCTV, 자동차 블랙박스 등은 제외한 것이라 아마도 최근에는 하루 100회는 훨씬 상회할 것이다.
묵언수행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다. 내 주변 모든 이들이 다 녹음을 한다고 생각하면 괴롭다. 그저 자신의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제 선의든, 무의식적이든 남의 대화, 남의 일에 대한 참견, 충고, 덕담, 조언 등등의 모든 것들을 말하기 전에 필터링이 필요한 세상이 됐다. 조금은 각박하고 한편으로는 무섭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글 권이현(라이프컬처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5호(26.01.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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