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데운 벽돌까지 동원···혹한의 키이우, 이 ‘구소련의 유물’에 발목잡혔다

박은경 기자 2026. 1.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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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중식 난방’ 러 발전소 공격에 무력화
키이우시 전체 주택 15%가 난방 끊겨
전력 복구 제한적, 피해 지역 계속 확산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핵심 인프라가 타격을 입은 가운데, 키이우 주민인 리우보우 클리멘코(66)가 가스레인지 위에 벽돌이 충분히 달궈졌는지 확인하고 있다. 그는 벽돌을 이용해 난방이 중단된 아파트 온도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공습이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혹한 속 난방 중단에 시달리는 가운데, 옛 소련 시절 형성된 도시 구조가 전쟁의 ‘취약 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5일(현지시간)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이날 “현재 시내 전체 주택의 약 15%에 해당하는 1330곳이 난방 공급이 끊긴 상태”라고 밝혔다. 인구 300만여명이 거주하는 키이우는 지난 9일과 20일, 24일 잇따라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핵심 기반시설 공격 이후 전력·난방·수도 복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국은 피해 복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복구 직후 추가 공격으로 다시 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회사 우크르에네르고의 비탈리 자이첸코 최고경영자(CEO)는 키이우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드니프로강 동쪽 좌안 지역의 난방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며 “이 문제가 점차 서쪽 우안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우크라이나의 피해를 키우는 구조적 요인으로 소련 시절 구축된 중앙집중식 공동 난방 체계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지목했다. 이 난방 방식은 외부 시설에서 물을 데운 뒤 이를 각 가정의 라디에이터로 공급하는 구조다.

우크라이나의 난방 발전소는 규모가 매우 커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을 경우 수만 명의 주민이 동시에 난방 공급을 잃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공격은 전력 공급에도 직접적인 차질을 초래한다. 발전기나 배터리로 일부 전력을 대체할 수는 있지만, 난방 문제는 훨씬 해결이 어렵다. 특히 난방기를 가동할 전력마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더욱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 가구 약 1100만곳이 중앙난방에 의존했으며, 개별난방을 사용하는 가구는 700만곳 정도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 공격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키이우 주민 올레나 얀추크(53)가 아파트에서 촛불과 데운 벽돌로 몸을 녹이며 추위를 견디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옛 소련 지역의 도시들은 1950년대 대규모 주택 건설 정책의 중심지였다. 당시 소련은 값싼 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위해 프리패브 콘크리트 방식의 대규모 건설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도시 풍경은 대체로 프리패브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어진 9층 규모의 표준형 아파트와 1950~1960년대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 시기에 대량 건설된 5층짜리 소형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주택에는 대형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된 난방과 전력이 중앙집중식으로 공급된다.

대규모 중앙집중식 설비는 평시에는 효율성이 높지만, 폭격이나 무인기(드론) 공격의 표적이 되면 수십만명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전문가인 유리 코롤추크는 BBC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식 난방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구조 변화 없이 중앙난방 체제가 유지돼 왔다”며 “이 시설들은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전쟁을 통해 취약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최근 난방 인프라를 직접 겨냥한 공격을 본격화한 것을 새로운 전술로 평가하며 “이전 에는 난방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간헐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이러한 취약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으로는 아파트 개별난방 설치 의무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수십 년간 이어진 소련식 도시계획을 단기간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부문과 핵심 기반시설, 주거용 건물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한 주 동안 드론 1700기 이상, 유도 항공폭탄 1380발 이상, 각종 미사일 69발을 발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규모 공격이 언제든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서방을 향해 방공 체계 강화를 위한 미사일 지원을 거듭 호소했다.

그는 또 이날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안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전보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확약”이라며 “문건은 100% 준비됐고 서명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종전 이후 러시아의 재침공을 억제하기 위한 방위 협정으로 종전 협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다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합의를 마친 이 안전보장안에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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