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그린란드 둘러싼 국제 논란에 덴마크의 원주민 차별 정책 재점화

유진우 기자 2026. 1. 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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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과거사 청산 요구
‘리틀 덴마크’부터 강제 이주까지
현대화 명분으로 원주민 인권 침해

미국이 최근 그린란드 병합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는 가운데, 덴마크가 과거 그린란드를 직접 관할하던 시기 가했던 불평등한 통치와 인권 침해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국 측 접근을 일축하고 있지만, 영토 주권에 대한 단호한 의지 표명으로 읽히는 이 발언을 두고 정작 그린란드 현지 반응은 싸늘하다. 덴마크가 자행한 비인간적인 인구 조절 정책이 재조명되면서 그린란드 내부에서는 덴마크 ‘보호’ 논리가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25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 전경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그린란드를 둘러싼 외교적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더타임스와 미국 뉴욕포스트는 최근 잇달아 과거 그린란드에서 벌어진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들 증언과 집단 소송 움직임을 전했다. 피해자들은 덴마크가 개인의 신체를 국가 정책 대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논란의 핵심은 1966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집중적으로 진행된 ‘스파이럴 캠페인(Spiral-kampagnen)’이다. 당시 덴마크 보건 당국은 그린란드 인구 증가 억제와 복지 예산 절감을 이유로 가임기 여성 절반에 해당하는 약 4500명에게 자궁 내 피임 장치(IUD)를 삽입했다. 이 장치는 정자 이동을 억제하고 수정란 착상을 막아 임신을 방지하는 피임 기구다.

지난해 덴마크 정부가 설치한 독립 조사위원회는 1960~70년대 그린란드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충분한 설명이나 동의 절차 없이 해당 시술이 이뤄졌다는 피해 주장과 의료 기록이 다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아마록 페테르센은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27세가 돼 병원을 찾았을 때 내 몸 안에 피임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13세 당시 어떠한 설명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조치로 출산 선택권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 정책과 관련해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 143명은 2024년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1인당 30만 덴마크 크로네(약 5800만 원) 배상을 요구하는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덴마크 정부는 2025년 8월 해당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9월에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그린란드를 직접 찾아 피해자들을 만났다. 다만 배상 문제는 진상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결정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왔고, 이후 2025년 12월 의회 합의로 1인당 30만 크로네를 지급하는 보상안을 확정했다.

그린란드-덴마크 관계 주요 쟁점

전문가들은 이 사안을 단순 의료 사고가 아닌 정책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다. 강제 불임이 덴마크가 장기간 추진해 온 그린란드 동화(同化) 정책의 일환이었다는 분석이다.덴마크는 195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식민지였던 그린란드를 덴마크 행정 단위로 편입했다. 이후 ‘현대화’를 목표로 교육, 주거, 행정 전반에 걸친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리틀 덴마크(Little Danes)’ 실험이 대표적 사례다.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원주민 아동 22명을 본토로 보내 양부모 가정에서 덴마크어와 문화를 가르쳤다. 이들을 그린란드 엘리트 계층으로 키워 덴마크화에 앞장 세우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귀국 이후 그린란드어를 잊고 가족과 소통하지 못했다. BBC는 “이들이 정체성 혼란 속에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덴마크 정부는 이 실험에 대해 2020년 공식 사과했다.

또 편입 이후 1970년대까지 20년 가까이 추진했던 거주지 강제 이전 정책은 그린란드 원주민 공동체를 해체시켰다. 덴마크는 행정 효율성을 이유로 소규모 어촌 마을을 폐쇄하고 주민들을 도시 아파트 단지로 이주시켰다. 이 같은 정책들은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보호해야 할 공동체라기보다, 행정·사회적으로 재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타의로 주도한 급격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학계에서는 전통적인 수렵·어로 기반이 약화되고 실업과 저숙련 노동으로 밀려나는 과정이 알코올 문제와 자살 증가로 이어졌다고 본다. 국가별 행복지수 1~2위에 자주 오르는 덴마크 본토와 달리, 그린란드는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 지역으로 꼽힌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약 71명에 달한다. 자살률이 OECD 최상위권인 한국과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같은 해 한국(약 25명)에 비해 거의 세 배에 달한다.

옌스 프레데릭 닐슨 그린란드 총리(오른쪽)가 24일 덴마크 왕립 해군 함정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사회 문제들은 그린란드 정치권에 독립에 대한 정서적 지지를 불러 일으켰다. 다만 로이터는 “경제·행정 현실을 고려한 신중론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했다. 현재 그린란드 자치정부 예산 절반 이상은 덴마크 정부가 제공하는 약 39억 크로네(약 8900억 원) 규모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는 공무원 급여와 의료·교육 시스템 운영의 핵심 재원이다. 전문가들은 덴마크 지원이 중단될 경우 그린란드 공공 시스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체적인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의사, 교사, 고위 공무원 등 전문 인력 역시 덴마크 본토 출신 비중이 높다. 그린란드어가 공용어지만, 행정 실무와 고등 교육은 여전히 덴마크어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런 구조는 덴마크 지원이 그린란드 사회를 유지하는 동시에, 주요 결정권이 그린란드 외부에 집중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북극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 변화도 그린란드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그린란드 병합 발언과 관련해 국제 사회에서 대응에 나선 주체는 덴마크였다. 그린란드 정부는 공식석상에서 제한적인 발언을 하는 데 그쳤다. 이는 그린란드가 자치권을 보유했지만, 외교·국방 등 핵심 사안에서는 여전히 독자적 주체로 나서기 어려운 구조임을 보여준다. 북극권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인구 5만6000여 명에 불과한 그린란드가 외교·국방 전반을 독자적으로 떠안기 어렵다는 점도 홀로서기가 어려운 이유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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