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세대' 꼬리표 뒤엔… "사무관과 밤샘 공부한 교육부 장관"

최은서 2026. 1. 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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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 초대 교육부 장관…40대로 '눈길'
전임 정부 정책도 계승할 것은 이어받아 호평
"이해찬식 개혁이 학력 저하 초래" 비판도 있어
"특기적성의 중요성, 이 전 장관 때 처음 강조"
1998년 11월 국회 교육위의 교육부 감사에서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이 교원정년 단축 등 현안을 두고 의원들의 질타가 잇따르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1998년 3월 3일, 김대중 정부는 초대 내각을 발표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장관 임명자 17명 중 유일한 40대가 눈에 띄었다. 당시 3선 의원이던 이해찬(당시 46)이었다. 교육계는 이해찬의 교육부 장관 발탁을 의외로 여겼다. 이전까지는 주로 대학 총장 출신 등 교수가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 장관으로 보낸 1여 년의 시간은 이해찬이라는 인물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력이 됐다.

관료와 교육 전문가들은 그를 대체로 '그립(조직을 쥐는 힘)이 세고 학습 능력이 뛰어났던 장관'으로 기억했다. 이 전 장관이 추진했던 교육 정책에는 공과 과가 있지만 소신 있게 이를 밀고 나가는 힘은 분명했다는 설명이다.


"그립 세고 학습 능력 뛰어났던 장관"

이 전 장관은 전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부정하는 대신 필요한 건 이어받았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전 정권 정책을 버리는 요즘과 달랐다. 교육부 관료를 지낸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 개혁' 기조를 계승했는데 이는 충분한 토론을 통해 내린 결론"이라며 "당시 장관이 실무 사무관까지 모아놓고 '정책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장관실에서 밤새도록 공부했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이 토론 과정을 통해 5·31 교육 개혁을 김대중 정부가 계승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무원들이 뜬구름 잡는 보고를 하면 혼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이 교육부를 이끌 때 과장급이었던 박백범 전 교육부 차관은 "(이 전 장관이)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하기 전 공과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어서인지 예산 등 숫자에 밝아 수치 등 근거를 가지고 말하길 원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5·31 교육개혁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세계화·정보화 시대 대응을 위한 교육 개혁 방안이다. △평생학습사회 기반 구축 △대학의 다양화 △초중등 교육의 자율 운영을 위한 '학교 공동체' 구축 △인성 및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과정 △국민 고통을 덜어주는 대입제도 △학습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초·중등교육 운영 등을 세부 목표로 했다.

'실세 장관'답게 외풍으로부터 부처 공무원을 지켜주는 역할도 잘했다. 공무원들이 관가에서 가장 무섭고, 어려워하는 존재가 감사원과 기획예산처인데 이전 장관은 이들에게도 요구할 건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이 불필요한 감사를 나온 감사원 반장에게 '업무 특성을 잘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냐'고 호통치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해찬식 입시 개혁, 입학사정관제→학종으로 이어져

하지만 '이해찬식 교육 개혁'을 두고 비판도 있다.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키워주고 학습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학습량을 현저히 떨어뜨려 학력 저하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해찬 세대'(이 전 장관의 대입제도안의 영향을 받은 세대)라는 조어까지 등장했다. 특히 2002학년도 수능에서 수험생들의 전반적인 성적이 떨어지자 비판이 커졌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당시에 수능으로 대학 가는 게 주류였음에도 학생들에게 '한 가지만 해도 잘 갈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해 상당 부분 박탈감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1998년 7월,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차된 차에 환경방학 캐릭터인 '베짱이'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이를 두고 달리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배 교수는 "학생들이 획일적인 교과 중심으로 평가받는 대신 다양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게 당시 교육 정책의 방향"이라며 "학생별 특기적성의 중요성이 처음 강조되기 시작한 게 이 전 장관 시절"이라고 말했다. 이 철학은 이후 보수·진보 정권을 거치면서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 등으로 이름과 운영 방식을 조금씩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다. 또 '이해찬식 개혁이 학력 저하를 낳았다'는 근거로 쓰이는 2002학년도 수능은 '불수능'이라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이 잘하고 원하는 분야의 능력을 보고 대학이 뽑게 한 건 당시 서구사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세계적인 흐름에 올라탔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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