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과 광주시네마테크가 세계 영화사의 거장, 덴마크의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1889~1968)의 영화 세계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칼 드레이어 회고전’을 개최한다. 이번 회고전은 감독의 작품 세계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영감과 신비로운 영화적 체험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마련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광주광역시, 그리고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회고전은 오는 2월 6일부터 3월 2일까지 한 달 여간 진행되며, 무성영화 시기의 초기작부터 유성영화의 정점에 이른 마지막 작품까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주요 장편 10편과 단편 7편이 상영된다.
영화 ‘사탄의 책’ 스틸컷
칼 드레이어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양심과 믿음, 그리고 두려움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감독이다. 그의 영화적 문체는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클로즈업과 엄격하면서도 우아한 화면 구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드레이어의 삶 자체도 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었다. 혼외자로 태어나 입양 가정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정서적 불안과 권위주의적인 환경에서의 체험은 훗날 그의 작품 속에서 고통받고 억압된 인물들의 묘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12년 무성영화 각본 작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1919년 데뷔작 ‘재판장’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 미학을 완성해 나갔다.
영화 ‘옛날 옛적에’ 스틸컷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장편 라인업은 드레이어의 연대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의 데뷔작인 ‘재판장’(1919)은 플래시백의 효과적인 사용이 돋보이는 멜로드라마이며 , ‘사탄의 책’(1921)은 신성모독적인 묘사로 당대 교회와 좌익 양측의 비난을 받았던 문제작이다. 계급과 성, 반유대주의를 다룬 ‘서로 사랑하라’(1922)와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 동화적 연출의 ‘옛날 옛적에’(1922) 역시 주목할 만한 초기작이다. 특히 ‘집안의 주인’(1925)은 정서적 리얼리즘이 탁월하게 드러난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그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영화 ‘오데트’ 스틸컷
유성영화 시기로 넘어오면 그의 미학은 더욱 심화된다. 드레이어 최초의 유성 영화인 ‘뱀파이어’(1932) 눈에 보이는 공포보다 주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포에 집중한 음울한 분위기의 걸작이다. 이어지는 ‘분노의 날’(1943)은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고국 덴마크에서 완성된 작품으로 마녀사냥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다룬다. 1955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오데트’는 신의 존재와 믿음의 의미에 대해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회고전의 대미는 사랑과 자기실현의 문제를 단호한 시선으로 밀어붙인 마지막 장편 ‘게르트루드’(1964)가 장식한다.
영화 ‘뱀파이어’ 스틸컷
이번 회고전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평소 접하기 힘든 드레이어의 단편 7편이 함께 상영되기 때문이다. 미혼 여성의 낙태와 출산 사이의 갈등을 다룬 ‘좋은 엄마들’(1942), 덴마크 작은 교회들의 고유한 개성을 담아낸 ‘마을의 교회’(1947), 암 조기 검진 홍보를 위해 제작된 ‘암과의 투쟁’(1947) 등은 그의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드레이어의 작품 중 가장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는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1948)와 덴마크 조각가 토발센의 예술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토발센’(1949) 등 다채로운 주제의 단편들이 상영 시간 75분 내외의 단편선으로 묶여 관객을 만난다.
광주극장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달 28일 영화 ‘오데트’ 상영 후 유운성 영화평론가를 초청해 시네토크 시간을 마련한다. 드레이어의 작품이 지닌 기독교적 사유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운명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들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나누며 그의 매혹적인 영화 세계로 더욱 깊이 빠져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관람료는 성인 1만원, 청소년 9천원이며 상영 시간표 및 자세한 사항은 광주극장 네이버 카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