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의 새 표준이 된 ‘밸류업 이행력’…HD현대 2년 연속 1위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안옥희 2026. 1. 26.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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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환원 50조 시대’, 지배구조 개선이 밸류업 ‘기초 체력’ 증명
아모레·에코프로·KT&G·셀트리온, ‘밸류업 가점’에 수직 상승
공정거래위원회 86개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
361개 상장사 지배구조 조사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경기도 판교 HD현대그룹의 글로벌R&D센터. 사진=HD현대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상장사들이 집행한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체질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지배구조 개선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주주가치 제고와 이익 공유를 전면에 내세운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분석한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수치로 확인됐다. 올해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명시한 1차 상법 개정안 시행과 자사주 취득 후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 논의가 맞물리며 기업들의 대응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HD현대, 아모레퍼시픽, 에코프로, KT&G, 삼성 등 상위권 기업들은 법적 의무를 넘어선 주주환원 정책을 이미 실행 단계에 올려놓았다.

한경비즈니스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종합순위 톱 10>. 그래픽=송영 기자

<종합 순위>

 밸류업이 갈랐다…아모레·신세계·셀트리온 ‘순위 점프’

HD현대는 330점 만점에 300.9점을 기록하며 종합 1위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업지배구조 현황 자료 기반의 내부 통제 평가 최고점과 한국거래소 공시 우수법인 선정을 동시에 거머쥐며 2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밸류업 우수법인으로 경제부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그룹 차원의 주주환원 기조도 이어갔다. 특히 배당액을 먼저 확정한 뒤 실적을 반영하는 ‘선(先) 배당’ 구조를 정착시킨 점이 투자자 신뢰를 높였다는 평가다.

아모레퍼시픽은 291.6점으로 전년 대비 4계단 상승하며 2위에 올랐다. 배당성향 75% 유지와 자사주 300만 주 소각 등 사전에 제시한 주주환원 계획을 대부분 이행했다. 사외이사 비중을 66.7%까지 확대하고 이사회 내 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등 이사회 독립성도 상위권으로 평가됐다. 영문 공시를 자발적으로 시행하며 해외 투자자와의 소통을 강화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3위는 에코프로다. 전년 대비 7계단 상승하며 ‘지배구조 개선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자산 규모가 2조원에 미치지 않는 계열사까지 사외이사 비중 50% 이상 등 상장사 수준의 이사회 요건을 선제적으로 적용했다. 특히 배터리 업계 최초로 ‘직원이사제’를 도입, 현장 경험을 갖춘 인력을 이사회에 참여시킨 점이 특징이다.

KT&G는 전년 대비 8계단 오른 4위를 기록했다.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비중을 75%까지 확대하고 집중투표제를 실제로 운용한 점이 평가에 반영됐다. 집중투표제는 2023년 행동주의 펀드 요구로 도입됐으나 2025년 주주총회에서는 대표이사 후보로 선임되는 사내이사에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정관 변경과 관련된 주주권 논란이 일기도 했다.

KT&G는 2027년까지 3조7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을 수립하고 사내이사 추천권을 이사회로 이관하는 등 이사회 권한을 강화했다. 이후 주가는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주주환원과 이사회 권한 강화가 기업가치 평가에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사옥. 사진=아모레퍼시픽

삼성은 5위에 올랐다. 선임사외이사제와 함께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감시위원회’를 통해 최고경영진에 대한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 경영위원회를 제외한 주요 위원회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운영하고 IT 기반 준법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제도적 틀을 강화했다.

6위는 신세계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을 중심으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병행하며 전년 대비 8계단 상승했다. 소액주주의 주주제안을 수용하고 이사회 내 모든 위원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도록 한 점이 유통업계 지배구조 개선의 사례로 꼽힌다.

현대자동차는 260.2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 총주주환원율 목표를 35%로 상향하고 향후 3년간 4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혔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대표이사 겸직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 견제 장치를 보완했고 이사회 역량 구성표(BSM)를 공시해 전문성을 수치화했다.

롯데와 셀트리온은 각각 259.1점으로 공동 8위다. 롯데는 순위가 소폭 하락했지만 전 상장사에 ESG위원회를 설치하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섰다.

셀트리온은 전년 대비 13계단 상승하며 가장 큰 폭의 순위 상승을 기록했다. 셀트리온제약 합병 과정에서 주주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약 9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을 병행한 점이 주효했다.

교보생명보험은 255.8점으로 9위에 올랐다. 비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과반을 독립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ESG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상장사 수준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대표이사 선·해임권을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행사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한경비즈니스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부문별 평가 <사외이사 비율>. 그래픽=송영 기자

<부문별 평가>

 형식적 공시 넘어 ‘실질적 주주가치’로
 에코프로·KT&G ‘주주권 보장’ 선두

한경비즈니스가 분석한 지배구조 랭킹 평가의 핵심 지표는 △사외이사 비율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소수 주주권 보장 등 3개 부문이다.

‘사외이사 비율’ 부문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상징한다. 중흥건설이 비율 83.3%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이어 교보생명보험, 크래프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71.4%로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셀트리온(6위), 아모레퍼시픽(8위) 등은 사외이사 비중을 60% 이상으로 유지하며 이사회 독립성을 높였다.

상장사 거버넌스 시스템의 체계화 수준을 보여주는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부문에서는 하이브, 하림, 금호석유화학이 설치율 1위를 차지했다. 현대백화점(2위)은 이사회 내 전문 위원회 의장을 모두 사외이사에게 맡기는 파격적 시스템 경영으로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HD현대(4위), 네이버(6위) 등은 사외이사 중심 운영을 정착시켰다. 특히 삼성(8위), 신세계(9위), 롯데(10위) 등 대기업집단이 상위권에 포진하며 ‘이사회 중심 경영’이 대세임을 보여줬다.

밸류업의 직접적인 지표인 ‘소수 주주권 보장’ 부문에서는 에코프로가 전자투표제, 서면투표제를 모든 상장 계열사에 도입, 100점 만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KT&G(2위)는 집중투표제의 실질 운영으로 평가받았고, 한화(4위)는 그룹 차원에서 전자투표제를 전면 시행하고 주주총회 소집 공고 시점을 법적 기준보다 앞당겨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 기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신세계(8위)는 소액주주 제안을 실제 경영에 반영했다. SK(10위)와 포스코(8위) 등 대기업 지주사들도 소통 채널을 다각화하며 밸류업 열풍에 동참했다.

한경비즈니스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부문별 평가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그래픽=송영 기자
한경비즈니스 2026 기업지배구조 랭킹 부문별 평가 <소수 주주권 보장>. 그래픽=송영 기자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로 이어지다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은 시장 지표에서도 일정 부분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2년 차인 2025년 밸류업 지수는 연간 89.4% 상승하며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웃돌았다.

소수 주주권 보호 제도를 도입하고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에 나선 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해당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21조4000억원, 배당금은 50조9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3차 상법 개정안에서 예고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기업별 대응 방식의 차이도 뚜렷해졌다. KT&G는 법 시행 이전부터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서며 주주환원 기조를 강화했다. 셀트리온 역시 합병 이후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을 병행하며 주주 친화 정책을 확대했다.

반면 에코프로는 자사주 소각보다는 RSU 등 주식 기반 보상 제도를 통해 주주와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거래 비중은 18.8%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기업지배구조 랭킹 결과는 지배구조 개선이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 기업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2024년 0.88배까지 하락했던 국내 상장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이후 1.59배로 반등한 배경에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주주환원 확대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도 정비도 이어질 예정이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1분기 중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등을 반영해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고 6월부터는 공시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관련 지수를 재편할 계획이다.

이번 랭킹은 기업들이 상법 개정과 밸류업 정책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상법 개정이 입법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서도 일부 기업이 선제 대응을 통해 제도 변화에 맞춘 주주환원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주주충실 의무 논의가 맞물리면서 과거처럼 대주주 중심의 경영권 방어 논리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며 “주주환원 정책을 지속해서 실행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시장 평가 차이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프로 포항캠퍼스. 사진=에코프로

◆ 어떻게 선정했나

한경비즈니스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하는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자료를 바탕으로 2019년부터 기업지배구조 랭킹을 산출하고 있다. 2026년에는 86개 기업집단 소속 361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사외이사 비율 △이사회 내 위원회 설치 △소수 주주권 보장 등 3개 부문에 각각 100점 만점을 부여했다.

여기에 2026년 시장 최대 화두인 밸류업 프로그램 대응도를 반영하기 위해 한국거래소(KRX)가 발표한 △2025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우수법인과 △2025년 밸류업 우수 상장기업 명단(총 13개 사)에 대해 30점의 가점을 추가, 총점 330점 만점으로 변별력을 높였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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