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대신 테마 샀다" 액티브 ETF가 이끈 코스피 5000[ETF 300조 시대①]

“방산주가 좋다는데 뭘 사야 하나?” 지난해 말 투자자 A 씨는 급변하는 증시 테마 변동에 현기증을 느꼈다.
유망한 산업이라는 건 알았지만 어떤 기업이 수출 계약을 따낼지 알 수 없었고 막상 특정 종목에 올라타자니 선뜻 매수 버튼을 누르기 어려웠다. 연초부터 달린 방산 대장주를 사자니 ‘고점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방산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였다. 한두 종목에 베팅하거나 특정 지수를 따르는 대신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리스크를 낮추고 시장 상황에 맞춰 주도주를 갈아 끼우는 펀드매니저의 선택을 믿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3개월 만에 37%라는 수익률을 확인한 그는 또다시 유망한 ETF 테마를 찾아 나섰다.
ETF 하루 평균 11조 거래

주가 상승과 함께 국내 ETF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ETF 순자산은 300조원을 돌파했고 올 들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1조원을 넘어섰다. 코스피 시장 전체 거래대금(일평균 24조7172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말 하루평균 거래대금(6조5691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하루 거래 대금이 5조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코스피가 연일 고점을 새로 쓰자 개별 종목보다 지수나 테마에 올라탈 수 있는 ETF로 자금이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ETF는 인덱스펀드를 상장시킨 것이다. “건초더미에서 바늘(수익 종목)을 찾으려 하지 말고 건초더미(시장 전체)를 사라”는 인덱스 펀드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ETF는 단순한 지수 추종을 넘어 능동적인 투자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하게 시장의 지수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액티브(Active) ETF로 시장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액티브 ETF는 펀드매니저가 유망 종목을 직접 선별하고 비중을 조절한다.
액티브 ETF가 전문가의 ‘장바구니’로 비유되는 이유다. 패시브 ETF와 달리 능동적인 운용을 통해 시장을 뛰어넘는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다. 특정 테마가 ETF의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해당 ETF로 유입된 자금이 다시 편입 종목의 주가를 상승시키는 수급효과도 크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리스크는 줄이면서 상장 주식 형태로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액티브 ETF의 가장 큰 무기는 지금처럼 반도체, 로봇, 방산, 조선, 우주항공 등 산업의 급속한 변화나 테마가 쉴새 없이 바뀌는 순환매 장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항공’이라는 테마가 부상할 때 개인투자자가 수많은 관련주 중 어떤 기업에 실질적인 호재가 있을지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액티브 ETF는 전문가가 현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모멘텀을 가진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수시로 재편한다. 오늘 터진 호재를 내일 당장 비중을 높여 반영할 수 있는 기동력도 갖췄다.
액티브 펀드 순자산 100조원 눈앞

국내 증시에서 산업 테마가 차례대로 오르면서 액티브 ETF로의 자금 유입 역시 빨라지고 있다. 1월 21일 기준 국내 상장된 285개 액티브 펀드의 순자산은 96조558억원에 달한다. 작년 초(54조6062억원)와 비교하면 1년 만에 74%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 국내에 신규 상장한 173개 ETF 중 약 40%(69개)가 액티브 ETF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ETF 본고장 미국은 지난해 신규 상장 종목의 83%가 액티브 ETF일 정도로 ‘액티브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액티브 ETF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지난해 처음으로 패시브를 앞질렀다. JP모간자산운용은 글로벌 액티브 ETF 시장 규모가 2024년 1조 달러(약 1446조원)에서 2030년 6조 달러(약 8675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액티브 ETF의 인기를 이끄는 핵심 요인은 수익률이다. 국내 상장된 액티브 ETF 285개 중 218개(76.5%)가 최근 6개월간 플러스 수익을 기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1개 상품은 최근 6개월 수익률이 50%를 넘어설 정도로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개별 상품별로 살펴보면 성과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로봇액티브’는 최근 6개월간 96.5%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현대자산운용의 ‘UNICORN SK하이닉스밸류체인액티브’ 역시 같은 기간 94.5%라는 성과를 거뒀다.
3위부터 5위도 반도체 기업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가 차지했다. 'WON반도체밸류체인액티브’(88.8%), ‘KODEX 아시아AI반도체exChina액티브’(80.9%), ‘TIGER 코리아테크액티브’(77.9%) 등 반도체 테마를 담은 액티브 ETF들이 줄줄이 고수익을 기록했다.
액티브 ETF의 성장은 자산운용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투자자들이 일반 펀드 대신 거래가 편리한 액티브 ETF로 대거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들에 ETF는 단순한 상품 라인업이 아니라 회사의 평판과 운용 실력을 입증하는 핵심 전장이 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액티브 ETF의 성장세를 두고 “일반 펀드시장에 머물러 있던 투자자들을 패시브 ETF의 장점이 그대로 투영된 액티브 ETF로 유도함으로써 일반 펀드에서 ETF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보수율이 높은 액티브 ETF의 부상은 악화되고 있던 자산운용업 수익구조 개선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액티브 펀드를 앞세워 성장한 신흥 강자들도 등장했다. 국내 주식형 액티브 ETF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타임폴리오는 대형사들이 장악한 패시브 시장 대신 운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액티브 ETF에 집중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타임폴리오의 ETF 운용자산(AUM)은 올해 들어 4조원을 돌파했다.
퇴직연금, ETF 열풍 가속화

보수적이었던 퇴직연금 시장도 ETF 열풍에 가세했다. 과거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지수만 따라가는 패시브 ETF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액티브 ETF를 통해 연금 자산을 보다 공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퇴직연금 계좌에 ETF를 담으면 과세이연 혜택으로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데다 글로벌 증시에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계좌로 개별 종목이나 해외 상장된 ETF에 투자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 상장된 해외 테마 ETF를 활용하면 세제 혜택을 누리면서도 미국 증시 상승률에도 올라탈 수 있다.
상위 5개 증권사(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내 ETF 투자 비중은 2022년 말 12.7%에서 2025년 말 약 39.6%로 4년 사이 3배 넘게 늘었다.
노후 자금을 굴리는 퇴직연금 시장이 ‘투자의 영역’으로 본격 편입되면서 운용사들은 앞다투어 배당형 액티브 ETF나 테마형 상품을 내놓고 있다.
ETF 시장이 한 단계 더 진화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ETF와 지수를 3배 추종하는 ETF 출시 허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해외 시장에선 3배 레버리지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상품 선택지가 넓어지면 자금 유입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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