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식품 먹는 즐거움 [서울 말고]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음식에 관심이 없고 요리에 재능이 없다. 그래서 20~30대 자취생 시절에는 완제품인 빵이 주식이었고, 채소나 신선식품을 챙겨 먹지 않았다. 강원도 양양으로 이주하고 나서 달라진 점 중 가장 큰 부분이 지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파트에서 살고 텃밭을 가꾸지 않기 때문에 예전처럼 가락시장을 거쳐 와 마트에서 파는 걸 사는 게 익숙했다.
그런데 몇해 전부터 이웃 어르신이 문고리에 직접 키운 각종 채소를 걸어 두기 시작했다. 옆집은 강아지와 함께 사시는데 이 녀석들이 주인이 집을 비울 때면 심하게 짖어 꽤 소란스럽다. 이게 미안하셔서 각종 먹을거리를 나눠 주신다. 약을 치지 않고 정성껏 키운 채소는 크고 싱싱했다. 갑갑한 비닐에 갇혀 자라지 않은 애호박은 못생겼지만 맛과 향이 좋았다. 이를 계기로 신선한 식재료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직접 작물을 기를 자신은 없었기에 그즈음 회사 근처에 문을 연 로컬푸드 직매장에 자주 들른다.
로컬푸드는 농업인에게는 적정 가격을 통한 소득 증대를, 주민에게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접근성 보장을 도모하기 위해 지역에서 생산, 가공해 2단계 이하의 최소 유통단계를 거쳐 공급되는 농산물과 식품을 의미한다. 지역에서 오늘 아침에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를 소포장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가장 자주 사는 건 표고버섯이다. 양양이 송이버섯으로 유명하지만 못지않게 표고버섯의 맛과 향이 좋다.
이 직매장은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의 세부 사업 중 하나로 읍내에 개장했다. 사업 소식을 들었던 초기에는 걱정도 좀 했다. 사업의 심사를 맡아 참석한 자리에서 다른 심사위원이 전국에서 성공한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이 1%밖에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는 전북 완주군으로, 한국에서 로컬푸드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선구적인 지자체이다. 완주는 인근에 큰 도시인 전주가 있는 지리적 요건을 잘 활용했다. 완주군과 전주시 경계 지역에 1호점을 냈는데, 지자체에서 전주에 사는 공무원에게 퇴근할 때 들러서 쇼핑하라고 강하게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양양은 농가 수도 품종도 적다 보니 다양한 작물을 지속해서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우려가 있었다. 재배가 쉬운 특정 품목에 쏠리거나 겨울에는 품목이 더 줄어들거나 하면 소비자는 가도 살 게 없다는 인식으로 재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읍내에서 운영 중인 직매장은 완성형이 아니다. 로컬푸드 유통활성화센터가 종합터미널 근처에 별도로 건립되어 2027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의 시행착오가 향후 센터 운영의 발판이 될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 우승자 최강록씨가 유튜브 프로그램 ‘식덕후’에서 가다랑어 전문 식당에 붙은 ‘가고시마 지산지소 추진 매장’이라는 간판을 보며 지산지소(地産地消: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먼저 소비하자) 운동을 설명했다. 일본에선 로컬푸드가 1980년대 식생활 개선으로 시작해 2000년대에 지산지소 운동으로 본격화했다. 양양에도 직매장뿐 아니라 음식점으로 이어지는 ‘팜 투 테이블’ 식당이 있다. 농부이자 셰프인 주인이 다양한 우리 작물을 재배하고 이를 활용해 넝쿨콩 파스타, 북대기콩 후무스 등을 만드는데 담백하고 건강하게 맛있다. 농작물 수급이 어려운 겨울 동안 운영을 쉬고 있어 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최근 몇년간 지역의 부정적인 면을 자주 접하면서 폐쇄적인 시골에서 사는 게 좀 힘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역에서 사는 즐거움을 더 열심히 찾는 경향도 있는데 로컬푸드는 그중 하나다. 윤리적 소비 같은 대의명분 이전에 신선한 먹거리의 에너지에 기대고 싶어서다. 점심 뒤 매장에 들러 ‘오늘은 뭐가 나왔나?’ 둘러보는 일이 요즘의 쏠쏠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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