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숨기지 않았던 여성 화가, 그 얼굴에 새겨진 시대의 혼돈"

김소연 2026. 1. 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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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시대의 혼돈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격변 속에서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폴란드 여성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1894~1980)와, 긴장과 분열이 일상이 된 오늘의 미국을 살아내며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고 있는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46)의 연결고리다.

여성 서사인 '렘피카'가 엇갈린 평가 속에 브로드웨이에서 조기 종연된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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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브로드웨이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
'하데스타운' 토니상 최초 여성 단독 연출상
뮤지컬 '렘피카' 3월 아시아 초연 맞춰 내한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 놀유니버스 제공

예술가는 시대의 혼돈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격변 속에서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폴란드 여성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1894~1980)와, 긴장과 분열이 일상이 된 오늘의 미국을 살아내며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고 있는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46)의 연결고리다.

2019년 '하데스타운'으로 최초로 여성 연출가 단독으로 토니상 뮤지컬 연출상을 받은 채브킨이 뮤지컬 '렘피카'의 3월 아시아 초연을 앞두고 처음 내한했다. 22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연습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는 "'렘피카'는 시대를 견뎌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며 "인간의 어수선함과 혼돈은 렘피카가 겪어낸 상황이자 내가 지금 미국에서 살며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렘피카는 모든 혼란을 긴장된 얼굴, 완벽함이라는 얇은 막 아래에 눌러 담았다"며 "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나누며 존재하는지 그대로 느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혼돈과 엉망진창인 상태가 표면 위로 드러나는 방식에 훨씬 더 끌린다"고 덧붙였다.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은 "내가 가 보지 못한 곳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놀유니버스 제공

2024년 초연된 '렘피카'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파리로 건너가 '아르데코의 여왕'으로 거듭난 화가의 86년 인생을 기하학적 미학과 강렬한 음악으로 그린다. 채브킨은 렘피카의 '자화상(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을 상징적 작품으로 꼽으며, "1930년대 '신여성'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형성했다"고 말했다. "렘피카는 이 그림으로 일하고 욕망하며 자신의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해방된 여성의 얼굴을 완성했다"는 설명이다.

채브킨은 신화와 역사를 오늘의 정치·사회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언어를 바꿔 온 도전적인 창작자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초연된 '하데스타운'의 '우리가 벽을 세우는 이유(Why We Build The Wall)'라는 넘버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에우리디케를 신화 속 수동적 모습과 달리 생존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길을 개척하는 강인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렘피카'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해 온 해악을 인정하고 그 복잡함 속에 관객을 초대하는 일"이라며 "이 자체가 내가 살고 싶은 세계를 위한 하나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뮤지컬 '렘피카'의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이 22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와 한국 공연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놀유니버스 제공

두 아이의 엄마인 채브킨은 가장 진보적으로 보이는 예술 분야마저 남성 중심적인 데 대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 왔다. 자신이 후보에 오른 유일한 여성 연출가였다는 사실을 언급한 2019년 토니상 시상식 수상 소감은 당시 브로드웨이 안팎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는 "지금도 브로드웨이는 남성 중심적"이라며 "가족과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업무의 선을 긋는 순간마다 그 선택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려고 계속 스스로를 다잡는다"고도 했다.

여성 서사인 '렘피카'가 엇갈린 평가 속에 브로드웨이에서 조기 종연된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전형적인 남성 영웅 또는 악당 서사에 익숙한 브로드웨이 비평계가 렘피카의 독자적인 야망을 읽어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서울 공연으로 작품 '렘피카'가 ‘다음 생’을 시작하게 되는 듯해 벅차다"고 말했다.

'렘피카'에는 한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렘피카 역은 김선영, 박혜나, 정선아가, 렘피카의 뮤즈 라파엘라 역은 차지연, 린아, 손승연이 번갈아 맡는다. 3월 21일부터 6월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놀(NOL) 씨어터 코엑스 우리은행홀에서 관객과 만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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