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옆자리] 도시를 데우던 손들

김영희 2026. 1. 2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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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열 살 무렵까지 살던 그 시절 태백은 늘 검은'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옷가게와 이불가게, 그릇가게마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신상'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고, 오가는 시내버스 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연탄 한 장이 방을 데우고, 그 연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손길이 한 가족을, 더 나아가 작은 공동체와 도시를 지탱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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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암탄광역사촌 까치발 건물 모습. 강원도민일보 자료 사진

제가 열 살 무렵까지 살던 그 시절 태백은 늘 검은‘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탄가루가 바람에 섞여 골목을 돌았고, 새벽이든 낮이든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은 묵묵히 길을 나섰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시장 골목마다 국밥 냄새와 연탄불에 소고기를 굽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습니다. 낮에는 옷가게와 이불가게, 그릇가게마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신상’을 고르며 시간을 보냈고, 오가는 시내버스 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땅속과 땅위에서 도시는 24시간 쉬지 않았습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태백의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지만, 집 안은 늘 따뜻했습니다. 광산 근로자의 친인척과 지인들은 광업소에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던 연탄표를 얻어 연탄을 들여와 난방을 했습니다. 저희 가족도 고모부 두 분 덕에 훈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탄 한 장이 방을 데우고, 그 연탄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손길이 한 가족을, 더 나아가 작은 공동체와 도시를 지탱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에는 그 분주함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검은빛의 도시에도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만큼, 그 영화는 끝이 없을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한석탄공사 광업소의 조기 폐광은 한 시대의 문을 서둘러 닫았습니다. 지역경제 피해는 8조9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더욱 직접적입니다. 사람이 줄고 불이 꺼지며, 도시는 점점 냄새도 소리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폐광지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강원도가 추진 중인 폐광지역 경제진흥사업은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태백의 청정메탄올·핵심광물 중심 미래자원 클러스터와 삼척의 중입자 가속기 기반 의료 클러스터는 석탄 이후의 시간을 에너지와 의료, 미래자원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석탄을 캐던 도시가 친환경 연료와 미래 자원을 다루는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입니다.

다만 이 계획들은 아직 ‘가능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산업단지와 클러스터가 조성되더라도 사람이 머물지 못한다면 도시는 다시 비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산업은 대체되는 삶과 함께 가야 합니다. 일자리와 교육, 정주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전환은 또 다른 단절을 낳을 뿐입니다.

탄광은 언젠가 반드시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기억 속에만 남을 것인지, 새로운 역할로 다시 불릴 것인지 말입니다. 폐광의 끝에서, 강원도의 폐광지역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다음으로 무엇을 캐내며 살아가야 할까요.

관련기사를 첨부합니다. ▶폐광-위기에서 기회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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