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료 희망을 캐다] 10. 박진성 강원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설화 2026. 1. 2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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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를 지킨 한 의사의 선택이 하늘이를 살렸다
1지망 내과서 우연히 소아과 택해
부모 조건 없는 사랑 엿보는 곳
환자에 미안함·자괴감 느끼기도
내 가족에 추천할 의사 1위 선정
전원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 주장
서울 전원 김하늘 군 호전 ‘보람’
지역내 중환자 대응 여력 부족
소아 세부분과 의사 채용 요청
▲ 박진성 강원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이 20일 강원대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강원대병원 제공

“귀여움이 지구도 뿌신다고 하잖아요.” 왜 기피과인 소아과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박진성 강원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수련을 앞둔 당시 1지망은 내과였다. “성적이 안 됐어요. 마침 소아과에서 제안이 있었고요.” 우연히 선택한 진료과였다. 소아과에 오고서 아이들이 예쁜지 알게 됐다. 세상 떠나가라 울다가도 웃어주는 게 아이들이었다. 20일 강원대병원에서 박 교수와 만났다.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박 교수의 얼굴이 환했다.

■‘가족’을 되새기는 소아과

누구나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특히 그렇다. 아이는 혼자 오는 경우가 없다. 언제나 보호자와 ‘함께’다. 그런 점에서 박 교수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는 일이 많다. “병실 복도에서 아이들을 데리고서 보호자가 수액을 끌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봐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조건없는 사랑이잖아요. 그런 사랑을 엿보는 게 소아과인 것 같아요.”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박 교수는 좋다. 아이도 보호자도 이런 박 교수가 전하는 사랑을 느낀다. 병원을 옮기는 박 교수를 두고 한 보호자는 “그동안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의 아이 사랑은 동료들도 안다. 지난해 말 강원대병원 직원들이 꼽은 ‘내 가족에게 추천할 수 있는 의사’ 1위에 박 교수가 선정됐다.

보람을 느낄법도 한데 박 교수는 일을 하며 ‘미안함’,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버스를 타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결과가 좋지 않았던 환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해진 치료는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의사를 만났더라면 결과가 또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거죠.” 이야기를 하는 교수의 얼굴에 금세 그늘이 졌다.

■열한 번째에서야 가능했던 이송

지난 2024년 2월 말의 일이다. 소아 응급실 당직을 섰던 박 교수에게 1형 당뇨 환자가 찾아왔다. 환자는 합병증인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심한 탈수 증세를 보였다. 박 교수는 “소아 내분비 전문의가 사직한 우리 병원에서는 치료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치료가능한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병원 열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받는 곳이 없었다. 열 한 번째에서야 겨우 병원을 찾았다. 전공의 시절 수련을 했던 병원이었다. 박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연을 활용한 거잖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전원을 문의하면 대체로 대형병원 가운데 한 곳은 받아줘요. 그런데 ‘운이 없으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날이 그랬습니다.” 당시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한 전공의들의 사직이 이어지던 때다. 그 타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받았다’. 그런데 병원에선 치료가 안 되는 질환을 갖고 있다. 이 경우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는 전원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다른 환자를 볼 수가 없고, 환자 전원이 지연되면서 생기는 책임은 의사 몫이라는 게 박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전원 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했다. 전원을 읍소하고, 전화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갖추자는 이야기다. 여기에 강원도는 전원에 동행할 의료인력이 필요하다.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전원에는 의료진이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가 전원을 떠나면 응급실은 빈다. 박 교수는 공중보건의, 군의관 등 지역에 배치된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중환자를 받기 위해선

환자 이송이 항상 서울로 향하는 건 아니다. 김하늘(가명) 군은 지난해 7월 인공호흡기를 달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강원대병원으로 왔다. 하늘 군은 태어나자마자 세브란스병원에서 중증도 높은 수술을 받고 1년 여를 머물렀다. 이후 보호자는 강원대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처음엔 박 교수도 반대했다. 중환자를 돌볼 여력이 못됐다고 했다. 사망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보호자에게 “딴 데를 알아보고 정 갈 곳이 없으면 연락은 달라”고 했다. 심장수술, 기도 절개술을 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그렇게 박 교수가 아이를 품었다. 아이는 두 달 여만에 인공호흡기를 뗐다. 지금은 병실에 머물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소아과 의료진들은 모두 하늘이를 안다. 가족이 없는 아이에게 의료진은 아빠이자 누나, 이모다. 박 교수는 “하늘이를 떠올리면 미안함보다 좋은 기분이 든다. 하늘이를 받게 된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하늘이 같은 아이를 지역이 다시 품을 수 있을까. 박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중환자를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사가 필요하다. 소아청소년과에는 9개의 분과가 있지만 진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진료과목은 감염, 소화기영양, 알레르기·호흡기, 신생아, 심장 등 5개 분과다. 신경, 혈액종양 전문의는 전일제 근무가 아니고, 내분비와 신장은 전문의가 없다.

박 교수는 “중환자일수록 필요한 진료과목이 여러 군데에 걸쳐 있다”며 “전원보낼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4~5개 분과는 대학병원에서 많이 모자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문의가 없으면 전공의도 없다”며 “소아 세부분과, 소아 협진과의 의사가 갖춰져야 한다”고 의사 채용 지원을 요청했다. 이설화 기자 lof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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