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민주정부 수립 함께한 ‘전략가’이자 ‘킹메이커’…이해찬 전 총리 별세

25일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과거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선 민주화 투사이자 7선 국회의원,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개혁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에서 그는 언제나 전략·조정을 책임지며 정치 중심에 섰고, 4대에 걸친 대통령들과 ‘킹메이커’ ‘정치적 동지’ ‘정치적 후견인’ 등 깊은 관계를 맺으며 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4년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번의 옥고를 치렀고,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에도 재야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학생운동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재야의 활동가는 이후 약 40년의 시간을 제도권 내 민주개혁 정치 세력의 역사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뒤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종인(민정당), 김수한(통일민주당) 등 당시 거물급 정치인들을 꺾고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19·20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두차례 더 당선되는 등 모두 7선 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선 46살의 나이로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엔 52살 나이로 참여정부 두번째 국무총리가 됐다. 초대 교육부 장관 시절엔 야간 자율학습과 학력고사 폐지 등 고강도 교육 개혁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이 나오며 ‘이해찬 세대’라는 용어도 생겼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운 측근이었던 그는 참여정부 시절 ‘실세 총리’로 불리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다가, 2006년 ‘3·1절 골프’가 도마에 오르며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민주당의 당대표를 맡을 때도 문 대통령과 깊은 신뢰 관계를 바탕에 둔 ‘실세 당대표’로 통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당시 민주당 대표직을 자신의 ‘마지막 소임’으로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 말대로 2020년 21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며 민주당을 1987년 이후 가장 의석수가 많은 정당으로 거듭나게 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당시 당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 김부겸 전 총리와 함께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다만 ‘버럭해찬’이나 ‘호통 총리’란 별명이 붙을 만큼 거침없는 발언으로 때때로 정치권을 뒤흔들기도 했다. 2004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 차떼기당 맞지 않느냐”며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그는 당대표 시절인 2018년 “개혁정책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20년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 (집권해서) 가야 한다”며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밝힌 바 있는데,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2년 10월 이를 다시 꺼내들며 “5년 금방 간다”고 말해 ‘거대 야당의 오만’이라는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특히 당대표 시절,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결정적 국면마다 보호막이자 조력자 역할을 자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2018년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이 검사 사칭, 친형 강제입원 의혹 등으로 기소돼 당 안팎에서 징계 요구에 직면하자, 당시 당대표였던 이 수석부의장은 “징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정치적 생존 길을 열어준 게 대표적이다. 2021년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 때도 이재명 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하며 힘을 실었고, 이후 이른바 ‘이해찬계’ 의원들이 대거 이 대통령을 돕게 됐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고인과 이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이 일치했고,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며 “대통령의 진가를 비주류 시절부터 알아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10월 이 수석부의장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했고 그것이 이 수석부의장의 마지막 임무였다.

고한솔 고경주 신형철 기자 so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지역의사제 벌써 술렁…“강남 살아도 구리 고교로 가면 돼”
- 오바마 부부 “미네소타 총격, 미국 핵심 가치 공격…불의에 맞서야”
- ‘김경 공천 로비’ 의혹 확산…강선우 넘어 2023년 민주당 지도부로
- 이 대통령 지지율 53% 제자리…“오천피 이뤘지만 이혜훈 악재” [리얼미터]
- “500원만 넣거라, 방학 때 밥은 우리가 책임질게”
- ICE, 미니애폴리스서 2살 아이도 체포…파문 일자 뒤늦게 풀어줘
- 이 대통령 “민주주의 역사 큰 스승 잃었다”…이해찬 전 총리 정치권 애도
- 4번의 민주정부 수립 함께한 ‘전략가’이자 ‘킹메이커’…이해찬 전 총리 별세
- 이 대통령,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보유세 강화 뜻…하루 4차례 글 올려
- 주한미군, 육군 중심 ‘한반도 붙박이 군’에서 변화…전작권 환수 속도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