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를 만나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문학의 꽃 피워내다

장유진 2026. 1. 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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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뜻이 무색하게도 신춘문예 당선은 늘 봄이 아닌 겨울 중턱에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신춘문예(新春文藝) 글귀 위로 떠오르는 꽃은 목련도 개나리, 벚꽃도 아닌 동백. 얼어붙은 땅을 딛고도 자신만의 개화기를 기다려 맞이해낸 붉은 꽃송이가 생각난다. 지난 22일 오후 2시 경남신문사 1층 홀에서 열린 202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현장도 꼭 동백꽃 향기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절기의 흐름에 갇히지 않고, 한겨울 위에서도 저마다의 봄을 불러온 박필우(소설)·김미월(시)·허은주(시조)·고옥란(수필)·정남득(동화)씨의 꽃이 만개했다. 다가올 다음 계절, 꽃자리 아래 어떤 가지를 뻗고 어떤 열매를 기를지 이야기를 나눠봤다.
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허은주(시조·왼쪽부터)·정남득(동화)·고옥란(수필)· 박필우(소설)씨가 창원 용지문화공원에서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시 당선자 김미월씨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전강용 기자/

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허은주(시조·왼쪽부터)·정남득(동화)·고옥란(수필)· 박필우(소설)씨가 창원 용지문화공원에서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날 시 당선자 김미월씨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전강용 기자/

-우선 다섯 분이 처음 당선 소식을 듣게 된 순간의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박필우(소설)= 집에 홀로 있을 때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아내도 아이들도 아니고, 막걸리 한 잔이었어요. 그런데 몸에 작은 이상이 있어 의사에게 금주 권고를 들은 직후였던 터라 다른 방법이 없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하늘에 감사드렸습니다.

△김미월(시)= 당선 전화는 누군가 나를 시로 읽어줬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사실 한 번만 더 내년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자고 자신을 다독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나서 뭔가 할 일을 해냈다는 듯, 천장보다 크게 얼굴이 펴졌던 기억이 납니다.

△허은주(시조)= 회색빛 하늘이 무거운 날 버스 안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책없이 눈물은 왜 나는지 뿌옇게 보이는 풍경들까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더욱이 올해는 기대를 안 했던지라 이 놀라움조차 비현실 같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고옥란(수필)= 최종심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은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탈락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그래도 혹시’라는 기대의 공존. 최종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던 날은 ‘신춘’이라는 단어, 새해 아침 신문에서만 바라보던 그 단어가 내 인생에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던 날이었습니다.

△정남득(동화)= 사실 최종까지 올라갔다는 전화 이후에 당선됐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무언가를 했을 때 최고의 자리까지 가 본 적이 없었고, 나의 재능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 좀 더 노력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그 기다림 끝에 당선 소식을 듣게 됐던 순간과 신문에 제 글이 나온 것을 보게 된 순간에는 당황스러울 만큼 심장이 빨리 뛰었습니다.

-처음 문학을 시작했던 때를 기억하고 계시나요?

△박필우(소설)= 저는 40대 초반에 답사 동호회 활동을 하며 전국의 문화재와 역사 현장을 돌아다니곤 했었습니다. 다녀와서는 사진과 메모를 펼쳐 놓고 그때의 감성을 글로 옮겨 썼었죠.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 자랑처럼 글을 하나둘 올렸더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저를 글쓰기 고수라고 부르더라고요. 틈틈이 쓰던 답사기가 문학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미월(시)=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제게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러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라투스트라를 이야기하고 쇼펜하우어를 열변했어요. 읽지도 않은 그 책을 몇 년 동안이나 들고 다닐 즈음 우연히 정현종 시인의 ‘섬’을 만나게 됐죠.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때의 우연한 만남을 지금까지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은주(시조)= 제가 쓴 글을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글쓰기 재능을 알게 됐고, 친구들 응원에 떠밀려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고옥란(수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서재에서 타자기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활자들이 튀어나와 하얀 종이에 의미를 지닌 문장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 손가락이 자판 위를 달리며 춤을 췄고 그 춤이 하나의 문장으로, 하나의 글로 완성돼 나갔습니다.

△정남득(동화)= 어려서부터 글을 제법 쓴다는 소리도 들었고, 초등학교 때는 독후감 상을 받기도 해서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50대 중반에 들어서자 서서히 일도 줄어들고, 남는 시간을 알차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동화 짓기 수업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 당선작은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일까요? 얽힌 사연들이 궁금합니다.

△박필우(소설)= 다닌 지 40년이 훌쩍 넘은 단골 막걸릿집이 있습니다. 손님들 면면을 보면 세상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죠. 스스로를 ‘타짜’라고 자랑하는 사기꾼들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당선작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중 가진 것 하나 없어도 허세만은 하늘을 찌르는 인물을 모델로 삼았어요. 당신을 모델로 글을 쓰겠다고 하자, 대번에 흥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주제가 더 선명해졌던 것 같습니다.

△김미월(시)= 처음엔 당선작을 제하고 다른 시 3편만 응모하려고 했었습니다. 제출할 작품들을 정한 후 별생각 없이 컴퓨터 속에서 커서를 끌고 다니다가 우연히 클릭한 파일이 당선작인 ‘사과가 맛없을 때’였어요. 그렇게 그냥 한 작품 더 인쇄하고 맨 뒷장에 클립으로 집어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그게 당선작이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허은주(시조)= 평소에 EBS 방송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을 자주 보곤 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방송에 출연한 한 부부가 직접 건축에 참여하며 옥신각신 방 한 칸 두 칸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됐죠. 하루 동안 말 한마디로 마음의 집을 허물었다 지었다 하는 평범한 부부와 같다고 느껴 당선작인 ‘부부 리모델링’의 소재로 쓰게 됐습니다.

△고옥란(수필)= ‘세상은 이응으로 가득 차 있어’는 차곡차곡 쌓여있는 폐타이어들의 무덤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에요. 질주 본능을 상실한 이응들, 무표정한 이응들, 낡고 마모된 상처투성이의 검은 이응들 앞에 오래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검은 이응들이 모습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우리들의 종착지를 봤습니다.

△정남득(동화)= 당선작 소재가 된 미호종개는 제게 보물 같은 존재였습니다. 환경 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미호종개에 대해 설명하고 민물 어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눠왔거든요. 학술적으로 알고 있던 미호종개를 재밌는 이야기로 풀어 많은 아이들이 미호종개를 알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민물고기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차기작을 쓰게 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은가요?

△박필우(소설)= 요즘 종교를 주제로 중편 소설을 집필 중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종교가 화제의 중심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운데 신흥 종교가 발원되면서 사회에 큰 쟁점이 되고 있죠. 누구도 쉽게 건드리기 꺼리는 소재임은 틀림없습니다.

△김미월(시)= 헐렁헐렁한, 구멍 숭숭 뚫린 천막 같은, 마침내 독자들이 들어가서 완성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허은주(시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큰 동굴이 존재하죠. 다른 이의 영혼을 더듬는 건 구멍만 더 키우는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인간의 심리를 공부하고 통찰하는 주제로 시조를 쓰고 싶어요. 빛도 없는 아픔으로 들어가 함께 치유되는 글을 쓰려 합니다.

△고옥란(수필)= 차기작은 ‘목어’에 대한 글입니다. 바다의 물고기가 나무 모형으로 형상화돼 절에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했습니다. 불교에서 전해져 오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좀 자유로운 방식으로, 참신하게 써보고 싶어요.

△정남득(동화)= 저는 사회복지사로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오래 일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주인공을 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입니다. 한부모 가정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고 놀림을 받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글을 써서 모두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신춘문예로 첫발을 뗀 지금,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먼 훗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박필우(소설)= 유명한 명품 고전을 쓰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습니다. 위대한 결과를 이뤄내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목표도 있을 수 없죠. 성실한 작가, 내면이 아름다운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과 작가의 이미지가 동일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김미월(시)= 사물에 대한 어설픈 경험으로 대상을 파편화하거나, 추상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고 친숙해지려는 노력이 먼 훗날까지 시를 쓸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은주(시조)= 시조를 어렵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겠습니다. 누구든 시조를 쓸 수 있다는 것, 율격의 아름다움으로 리듬을 탈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시조시인이 되겠습니다.

△고옥란(수필)=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만으로도 절박하고 치열하게 글을 쓰는 작가. 적당히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헤엄치듯 쓰는 작가. 갇힌 영혼이 아닌 언어에 닻을 내린 영혼을 품고 온 힘을 다해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남득(동화)= 처음 경남신문에서 당선 전화를 주신 기자님이 제게 “작가님,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말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더 노력해야 하는 초보 작가지만, 좋은 글을 썼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됐으면 합니다.

-문학은 당선자분께 어떤 의미인가요.

△박필우(소설)= 문학은 에너지입니다. 글은 저를 살아있게 하고, 끊임없이 흐르는 자로 태어나게 합니다. 꿈꾸게 하고 삶을 지탱하게 하고 문학이라는 거름망을 통해 생각을 정화하게 합니다. 문학은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하는 삶의 무지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미월(시)= 문학을 생각하고 있자면 내 안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한가득 엉켜있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나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은주(시조)= 감기에 걸리거나 생리통으로 아플 때면, 만사 귀찮아야 되는 상황에서도 저도 모르게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문학은 제게 치유입니다.

△고옥란(수필)= 항상 규칙적이고 획일화된 일상 속에 ‘문학’이 없었다면 아마 질식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내 안에 유폐된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일이고, 그 목소리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죠.

△정남득(동화)= 문학은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피하려 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자 했던 노력이 글쓰기의 밑거름이 된 거 같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는 모든 이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또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독자들의 시선도 바뀔 수 있기에 문학은 어쩌면 등불 같은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장유진 기자 ureal@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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