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엄마의 일기장- 김리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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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마을이 가까운 한 골목에는 40년이 넘은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다.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책이다.
필자는 시와 일기장 속 글들을 모아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을 제목으로 해서 출간을 도와드렸다.
엄마의 구멍가게만 파는 물건을 사러 한 노신사가 방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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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마을이 가까운 한 골목에는 40년이 넘은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다. 2층 건물의 1층이 가게이고 2층은 다른 이웃이 세 들어 산다. 미닫이로 된 투명한 유리문 너머 각종 과일과 잡화, 반찬들이 가득하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는 팔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다.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책이다.
필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가게에서 삼남매를 키워내셨다. 아버지는 몇 해 전 돌아가셨다. 이제는 일흔이 넘은 어머니 혼자 가게를 운영하신다. 어머니는 홀로 되시기 전 가게 장사일, 남편의 암 투병, 크고 작은 교통사고 등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렇게 평생 가족과 장사 일밖에 모른다고 생각한 어머니를 재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 불쑥 당신이 쓰신 시라며 시 한 편을 보여주셨다. ‘과일 놀이터’라는 제목의 시였다.
‘내 작은 놀이터에는/일년 내내 과일 향이 나요/여태 돈으로 보였던 과일 친구들/지금은 내게 축복이 되어/사랑스럽게 보여요/저마다 자기 값을 안고/누군가에게 선택되어 가지요/내게로 와 삶의 기적이 된 /사랑스런 과일들/안녕’
일흔의 나이에 쓰신 시지만 동시처럼 맑았다. 당신의 일터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어 기분이 좋은 시였다. 이 외에도 고구마의 마지막 고통, 조기, 오징어, 엄마의 마음, 술 도깨비 등 다양한 제목으로 쓰신 시가 있었다. 어머니의 시는 남편에 대한 풍자와 해학, 일상 속 통찰, 삶에 대한 감사 등이 담겨 있었다.
그 시를 계기로 어머니에겐 긴 세월 써오신 일기장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기장 속에는 암 투병을 끝으로 남편을 떠나보내며 몰래 흘린 눈물이 있었다. 자식에 대한 기도와 어려움을 이겨내던 지혜로운 문장들이 넘쳤다. 필자는 시와 일기장 속 글들을 모아 ‘구멍가게 40년, 엄마의 일기장’을 제목으로 해서 출간을 도와드렸다.
이렇게 어머니는 구멍가게 할머니에서 작가가 되셨다. 엄마의 구멍가게만 파는 물건을 사러 한 노신사가 방문하신다. “미야, 엄마 오늘 책 5권 팔았어. 책이 따뜻하대.”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가 기분 좋다. 어머니처럼 일기를 쓰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김리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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