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1위 한국, 알고 보니 [왜 지금]
소재·부품 수입 의존 80%...구조적 불균형 심화
일본은 수직 통합으로 공급망 자립 완성
韓 로봇산업 균형 위한 공급망 혁신 시급
[지데일리] ‘로봇 밀도 세계 1위’. 숫자만 보면 한국은 명실상부한 로봇 강국이다. 하지만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불안한 불균형이 숨겨져 있다. 완제품은 넘쳐나도, 그 속을 채우는 소재와 부품은 여전히 해외에 기대고 있다. 로봇이 더 많아질수록 수입도 더 늘어나는 ‘성장의 역설’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5일 발표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는 한국 로봇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직격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로봇 활용도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급망의 뿌리는 여전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제조업 자동화와 서비스 로봇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며, 협동·서비스 로봇 시장이 양적으로 폭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쪽, 기술 생태계의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완제품 쏠림 구조, 산업의 ‘속 빈 강정’
한국 로봇기업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산업 구조의 ‘수평적 확장’이다. 즉, 완제품 경쟁력에만 몰두한 나머지, 원재료·소재·부품 분야의 성장은 따라가지 못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로봇기업의 64%가 연매출 10억 원 미만의 영세 기업이다. 산업 규모는 커졌지만, 기업 간 규모 격차와 기술 편중이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해외 의존도다. 한국은 로봇 원재료인 희토류 금속과 화합물의 6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핵심 소재인 영구자석과 고급 철강은 85% 이상을 중국과 일본에 의존한다.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은 40%대에 불과하다. 그 결과 로봇 생산이 늘수록 수입이 동반 상승하는 모순적 구조가 형성됐다.
예컨대 국내 한 제조 대기업의 서비스 로봇 생산라인에서 쓰이는 주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는 일본 및 독일산이다. 부품 가격이 전체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수익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역효과를 냈다. 이런 구조에서는 로봇산업이 아무리 성장해도, 국내 산업 전체가 선순환을 이루기 어렵다.
일본의 ‘수직 통합’, 공급망 자체가 경쟁력
보고서가 주목한 비교 대상은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로봇산업 공급망을 ‘수직 통합형’으로 구축했다. 원자재 단계에서부터 완제품 로봇에 이르기까지 한 산업 내부에서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정밀기계 기업들이 소재·부품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관련 기술이 자연스럽게 축적됐다. 그 결과 일본은 로봇소재·부품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60~70%를 차지한다. 희토류 재자원화 체계를 일찍이 내재화해, 공급망의 불안정성까지 줄였다.
이러한 기업생태계는 위기에도 강하다. 원자재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조달망을 확보하고, 공급망 위기를 내재화한 ‘위기 내성형’ 산업 구조를 형성했다. 반면 한국은 국제 정세나 환율 변동에 즉각적으로 흔들린다.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구조적 안정성은 낮은 셈이다.
공급망의 뿌리를 다시 세워야
보고서는 한국 로봇산업의 안정적 성장 조건으로 ‘균형’을 제시했다. 완제품 중심의 수평 확장에서 벗어나, 소재·부품·장비를 아우르는 수직적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로봇을 많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로봇을 구성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앞으로 과제는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수요-공급 기업 간 R&D 연계 강화다. 완제품 대기업과 소재·부품 중소기업 간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기술 상용화 지원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체 소재 기술 확보다. 희토류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신소재 연구 투자를 민관이 함께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도시 광산 기반의 재자원화 고도화다. 폐전자기기에서 금속 자원을 회수해 로봇 원료로 재활용하는 순환형 공급망 구축이 핵심이다.
특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보고서는 “국산화 과정의 위험을 민간이 단독으로 부담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일정 부분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제 혜택, 기술 인증 지원, 공공조달 확대 등이 거론된다.
기술 강국의 다음 단계는 ‘공급망 자립’
한국은 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로서 자동화 혁신의 선두에 서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로는 언젠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완제품 중심의 성장은 ‘규모의 착시’를 불러오고, 소재와 부품의 취약성은 결정적 순간에 산업 전체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은 이미 기술보다 ‘공급망’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에 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가진 나라만이 시장의 변동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한국이 진정한 로봇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눈부신 제조 기술 이면의 ‘부품 자립’과 ‘공급망 주권’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