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의 '북향민' 용어 변경, 언론이 비판하는 이유는?

장슬기 기자 2026. 1. 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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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2005년 첫 통일부 장관 시절 '새터민' 대체 시도 실패, 20년 만에 '북향민'으로
탈북민 당사자들 합의 없이 무리한 용어 대체…언어는 다수가 사용해야 생명력 유지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지난 2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시무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동영 페이스북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일 통일부 시무식에서 “탈북민이라는 이름 대신 공식 용어로 '북향민(北鄕民)'을 사용하겠다”며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북향민'이 그나마 차별과 배제를 떠난 중립적 호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달에도 '탈북민' 명칭 변경을 예고했고, 지난 9일에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협의회 구성기관(21개 관계부처, 17개 지방정부)에 북향민 용어 사용 협조 요청까지 했다.

그간 여러 차별표현을 순화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실제 순화한 표현이 정착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북향민'에 대해서는 비판적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언론에서는 어떤 이유로 '북향민' 용어 변경을 비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용어 순화에 있어 당사자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7일 주간조선 보도를 보면 일부 탈북민들이 '북향민' 용어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2009년 탈북한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은 “'탈북민'은 북한 독재정권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인간다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을 상징해 탈북민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드러낸다”며 “'북향민'은 자유와 인권의 상징인 탈북민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향민 명칭 강요 반대 탈북민 모임'도 성명에서 “탈북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온 정체성과 존엄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탈북민 사회의 불필요한 분열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북향, 북을 향한다는 뜻인가?

'탈북'이란 용어에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반면 '북향'은 그 뜻이 모호하다는 비판이다. 조선노동당 대남 공작부서에서 일하다 2004년 탈북한 장진성 작가도 “탈북민은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 아니라 '탈출'이라는 전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북향민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고향이라는 것인지, 북한을 향해 가겠다는 것인지조차 모호하다”고 했다. 한자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북에 고향을 둔 사람이란 '북향민(北鄕民)'이 아닌 북을 향하는 사람이라는 '북향민(北向民)'으로 읽힌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선 탈북 문제의 경우 진영논리가 고착화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랜 분단 현실에서 탈북민 중 상당수가 보수진영에 서서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이나 생존과 연계된 부분이기 때문에 현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즉 민주당 정부에서 탈북 문제를 접근할 때는 진영논리를 넘어설 만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일부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북한이탈주민 명칭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대체용어에 대해 탈북민들의 선호도는 '자유민'(28.1%)이 1위로 나타났다. '북향민'은 18.8%에 불과했다. 일반국민들의 선호도에서도 1위는 '북이주민(35.7%)'이었고, '북향민(28%)', '자유민(19.1%)'이 뒤를 이었다. 조사 상으로도 '북향민'으로 바꿀 유인이 부족하다.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용어 변경은 반발을 크게 불러올 수밖에 없다. 언어는 실제 사용돼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외면하면 사실상 죽은 존재가 된다. 한 예로 '유모차'를 '유아차'로 순화한 기본적인 이유는 '아이가 탄 차를 왜 엄마만 끈다고 생각하냐', 즉 성차별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에 더해 실제로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에 탄 주체인 '아이'를 중심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이 현실적이란 공감대를 얻었고 다수 언론에서도 '유아차'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탈북민'은 용어 변경의 명분이 쌓이지 않았고, 대체어로 제시된 '북향민'의 뜻이 오히려 '탈북민'보다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 지난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모습. 사진=MBC 뉴스 갈무리

정동영 장관, 과거 실패한 '새터민' 대체 시도

'탈북민' 용어 변경에 거부감이 큰 또 다른 이유는 정동영 장관의 과거 이력과도 맞물린다. BBC코리아 지난 23일자 기사를 보면 정 장관은 2005년 처음 통일부 장관을 할 당시 '탈북민' 대신 '새터민'으로 용어 변경을 추진한 적이 있다.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당시 탈북민 단체들이 반대했다. 당시에도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해 망명했다고 주장했다. '새터'라는 말이 오히려 차별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정 장관이 20년 만에 다시 통일부 장관에 임명돼 다시 당사자들과 공감대 없이 '탈북민' 용어를 바꾸려고 나섰으니, 탈북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단어를 배제하려는 목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관련된 용어는 이전부터 이념적이었기 때문이다.

▲ 한국경제 지난 19일자 기사

지난 19일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전 한국경제 기사심사부장)은 한국경제 칼럼 <'북향민'은 '새터민'의 전철 밟을까>에서 오래전 사용하던 '귀순(歸順)'이 사전에서 “적이었던 사람이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정함”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과거 냉전기에 쓰이던, 이념적 대립의 유산”이었다면서 “'귀순용사'는 단어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했다. 귀순용사는 현재 쓰이고 있는 '탈북민'의 초기 형태였고,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새터민'으로 바꾸려다 실패한 이후 다시 '북향민'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홍 부장은 “'북향민'의 등장은 강요된 우리말 순화가 언중 사이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며 “'새터민'의 실패를 돌아볼 때”라고 했다.

차별 용어를 개선하는 정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북향민' 용어 순화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도 나올 법하다. 세계일보는 지난 16일 기자칼럼에서 “행정 용어 하나를 바꾸는 데 들어가는 지원과 정성이 실제로 당사자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북향민으로 명칭만 바꾸고 현실이 그대로라면, 그건 기획서에만 존재하는 상징조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북향민' 대체는 다소 섣부른 시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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