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 사건은 서류보다 현장”…전문법원 서야 시간·비용 절감

이병욱 기자 2026. 1. 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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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부산시대 개막 <5> 해사법원 설치

- 국제조약·각국 법 등 복합 적용
- 전문 재판부 필요성 지속 제기
- 10년 전부터 부산 설치 목소리
- 선박·항만 기업 밀집지역 이점

- 영국·싱가포르 등 선진 해양국
- 주요 항만도시 통합설치 대세
- 항소심까지 부산서 담당 요구
- 행정·산업·사법 완전체 이뤄야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국가 해양 행정의 중심축이 수도권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단일 부처 이전을 넘어 국가 해양 정책의 무게중심이 바뀌었다는 상징성이 크다. 여기에 해양 공공기관 추가 이전과 주요 해운기업 본사 이전 논의까지 맞물리며 부산은 ‘해양수도’ 구상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아직 마지막 퍼즐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해사법원 설치가 그것이다.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과 해양금융, 물류 서비스 기업이 밀집해 해사 분쟁이 많은 부산에 해사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해사법원 설립 입법을 촉구하는 모습. 국제신문DB


▮해사법원 왜 필요한가

해사법원은 선박 충돌과 좌초 사고, 해상운송계약과 용선 분쟁, 해상보험, 국제 물류 거래 분쟁 등 해사 사건을 전담하는 전문 법원이다. 국제조약과 관습법, 각국의 상법과 민법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고난도 영역으로, 전문 법관과 판례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반 민사 사건과는 성격이 달라 전문 재판부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국내 해사 사건 상당수는 서울중앙지법 등 수도권 법원에서 처리된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해운·물류 기업들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서울로 올라가 재판을 치러야 한다. 사건 현장은 부산항과 남해·동해에 있는데 판단의 무대는 서울이라는 구조적 괴리가 오랜 시간 반복돼 왔다. 해양수산부 이전 이후 이 문제는 더욱 선명해졌다.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곳은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 기능이 그대로라면 해양수도 구상은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부산 해사법원 논의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의제가 아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부산변호사회와 해사법학계를 중심으로 전문 법원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에는 지역 현안 수준에 머물렀지만, 해사 분쟁이 늘고 국제 거래가 복잡해지면서 논의는 점차 공론화됐다. 2020년 국회 토론회를 계기로 해사법원은 공식 제도 논의의 장으로 들어섰고, 2023년에는 부산시와 지역 법조계가 공동으로 부산 설치를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이후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되며 논의는 제도 문턱까지 왔다. 지난해에는 부산과 인천에 각각 해사법원을 두는 ‘병행 설치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됐다. 수도권 접근성과 지역 균형을 함께 고려한 절충안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해사 사법의 실질적 중심이 어디에 놓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왜 ‘부산 해사법원’이어야 하나

부산은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해운·물류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조선·해양기자재 산업과 해양금융, 물류 서비스 기업이 밀집해 있고 글로벌 선사와의 거래도 일상적이다. 행정과 산업 인프라는 상당 부분 구축됐지만, 해사 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법 인프라는 여전히 수도권에 머물러 있다. 해양 행정과 산업, 사법이 맞물려 작동해야 할 구조가 완성되지 못한 채 비어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산의 현장성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는다. 부산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사 사건은 서류보다 현장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며 “선박 항만 기업이 밀집한 부산은 사실관계 파악과 증거 조사에서 분명한 이점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한 해운사 관계자는 “해사 분쟁이 발생하면 변호사 선임부터 재판 일정까지 대부분 서울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전문 법원이 부산에 생기면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게 줄고, 분쟁 대응 속도도 한결 빨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의 강점은 관련 산업 집적에만 있지 않다. 해수부와 해양 공공기관, 항만공사까지 더해지면 정책과 산업, 사법이 한 공간에서 맞물리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해사법원이 단순한 분쟁 해결 창구를 넘어 해운·물류 산업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 해양강국 사례 참고해야

주요 해양국가들은 이미 사법 인프라를 항만과 함께 구축하고 있다. 영국은 고등법원 내 해사 전문 재판부를 통해 오랜 판례와 신뢰를 축적하며 국제 해사 분쟁의 중심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톈진과 상하이 등 주요 항만 도시에 독립 해사법원을 설치해 해사 분쟁을 적극적으로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덴마크는 해사·상업법원을 통해 해상과 상사 사건을 통합 처리하고, 싱가포르는 국제상사법원을 앞세워 해사·중재·금융을 결합한 분쟁 해결 허브로 성장했다. 해사법원을 어디에 두느냐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인 셈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부산·인천 병행 설치안에 대해 부산 지역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1심만 부산에 두고 항소심이 수도권으로 올라가면 해사 사법의 실질적 중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판례 축적과 전문성 유지라는 해사법원의 본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시는 항소심까지 부산에서 담당해야 해사법원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해사 사건은 장기적 판례 축적과 전문 인력 운용이 핵심”이라며 “항소심이 분산되면 전문 법원으로서의 위상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사법원은 단순히 법원 하나를 더 세우는 문제가 아니다. 해수부 이전과 해양 공공기관 집적, 해운기업 본사 이전 논의와 맞물린 국가 해양 전략의 완성 단계다. 항만과 산업, 행정에 이어 사법 인프라까지 갖춰질 때 부산은 비로소 국제적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박재율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 공동대표는 “해사법원 설치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다. 해사법원조차 갖추지 못하면서 동북아 해양수도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해사법원 설치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제도적으로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동 기획: 국제신문, BNK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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