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픽한 대학로 화제작…일상서 마주치는 부조리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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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과중한 회사 업무와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 준비에 정신없이 바쁜 '남자(송현섭 분)'는 최근 의문의 복통까지 시작돼 기진맥진한 상황이다.
이런 그에게 스트레스를 더하는 사소한 일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잘못 청구된 TV 고지서다.
남자는 더이상 이 문제를 '그깟 TV 요금'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할 마지막 전쟁인 듯 대하며 비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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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화제작이 명동예술극장 무대
TV 요금 둘러싼 비대면 통화가 실존의 전쟁터로
시청각적 연출로 몰입 이끌어

매일 쏟아지는 과중한 회사 업무와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 준비에 정신없이 바쁜 ‘남자(송현섭 분)’는 최근 의문의 복통까지 시작돼 기진맥진한 상황이다. 이런 그에게 스트레스를 더하는 사소한 일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잘못 청구된 TV 고지서다. 남자의 집에는 화면이 꺼진 고물 TV 한 대뿐인데 자꾸 TV 요금이 청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요금을 돌려받고자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했지만 상담원과 연결되는 일부터 난항이다. 통화 대기와 디지털 음성이 수십 차례 이어진 끝에 마침내 연결됐지만 상담원은 ‘셋톱박스 신호가 정상 수신되고 있으니 TV를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남자는 집에 존재하지도 않는 셋톱박스에서 신호가 수신된다는 말에 황당해하고 이 사소해 보이는 문제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23일 막을 올린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연극 ‘셋톱박스’는 대다수 현대인이 매일 맞닥뜨리고 있는 일상의 부조리에 현미경을 들이댄 작품이다. 소통과 편의를 위해 도입된 자동응답시스템(ARS)이 오히려 상담원과의 연결을 가로막는 불통의 도구가 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상징하는 결혼식이 허례허식의 끝판왕이 되어 그 자체만으로 압박이 되는 현실이 무대 위로 줄줄이 펼쳐진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학계에 보고할 ‘특이 케이스’로 대하는 의료 전문가, 실현 불가능한 업무를 주면서 무조건 해내라고 압박하는 회사 상사, 비대면 전화 너머 고객의 간절한 요구를 ‘진상’ 취급하는 상담사 등도 ‘남자’의 복통을 가중시키는 부조리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부조리는 현실 속의 실제와 전산상의 기록이 맞붙을 때 자꾸만 현실이 패배한다는 지점일 것이다. 90분 동안 이어지는 연극에서 남자는 TV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세상은 서류와 기록을 내밀며 남자의 외침을 외면한다. 남자는 더이상 이 문제를 ‘그깟 TV 요금’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할 마지막 전쟁인 듯 대하며 비장해진다.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보강하기 위해 시청각적 연출에 공을 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툭 하면 울리는 디지털 신호는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거대한 라이브 화면에 비추는 배우들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과장된 표정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독특한 구도의 무대와 시시각각 이뤄지는 장면 전환으로 현실의 드라마를 초현실적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연출도 눈길을 끈다.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의 열연과 앙상블이다. 체력이 걱정될 정도로 열정 가득한 주역 배우는 물론 모든 장면마다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감동과 감탄을 부른다.
이번 공연은 한국 연극의 세계화를 견인할 대표작의 탄생을 돕기 위해 국립극단이 2023년부터 진행해온 민간극단 교류 및 정기 초청 사업인 ‘기획초청 Pick크닉’의 일환으로 열렸다. 공연은 2월 1일까지.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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